단원 김홍도(1745~1806)와 혜원 신윤복(1758~?)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역사소설 ‘바람의 화원’에는 김홍도의 작품 ‘황묘농접(黃猫弄蝶ㆍ노란 고양이가 나비를 놀리다)’이 등장한다. 극중 김홍도는 신윤복에게 “고희(古稀ㆍ일흔)를 맞은 노인을 위한 그림”이라고 설명한다. 중국어로 고양이 묘(猫)는 일흔 노인 모(?)와, 나비 접(蝶)은 여든 노인 질(?)과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옆에 그린 패랭이꽃은 축하를 의미하고 그 아래 제비꽃은 모든 일이 뜻대로 풀리라는 의미다. 가을에 피는 패랭이꽃과 봄꽃인 제비꽃이 한 폭에 들어 있는 것은 이처럼 조선시대 그림 속 자연물이 숨은 뜻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3월부터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소장품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전시하는 연속기획전 ‘간송문화전’의 다섯 번째 전시는 ‘황묘농접’과 같은 화훼영모(花卉翎毛ㆍ꽃과 풀, 날짐승과 들짐승)화 전시다. 고려 말 공민왕(1330~1374)부터 조선 말기 이도영(1884~1933)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550여 년 동안 이어진 조선 시대 화훼영모화의 흐름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황묘농접’처럼 대부분의 화훼영모화에는 숨은 뜻이 있다. 가령 표암 강세황(1713~1791)의 ‘향원익청(香遠益淸ㆍ향기는 멀수록 맑다)’은 진흙 속에서도 화사한 꽃을 피워낸다며 연꽃을 군자에 비유한 중국 유학자 주돈이(周敦?)의 ‘애련설(愛蓮說)’을 염두에 둔 것이다. 조석진(1853~1920)이 그린 ‘수초어은(水草魚隱ㆍ수초에 물고기 숨다)’은 쏘가리 두 마리를 그렸는데, 쏘가리 궐(闕)은 대궐(大闕)에도 쓰이는 한자다. 즉 과거에 합격해 대궐에서 일하는 관리가 되라는 축원을 담은 그림이다. 동식물 그림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숨은 뜻을 찾아가며 그림을 읽는 재미도 있다.
고려 말 등장한 화훼영모화는 지식인들이 성리학을 수용하면서 문인화를 있는 그대로 가져온 것에 가까웠다. 그러나 조선 중기에 이르러 조선만의 독자적인 성리학이 정립되자 그림도 주변 동식물을 보면서 그리게 됐다. 전시장에는 절정에 이른 조선 후기 화훼영모화를 중심으로 신사임당, 겸재 정선 등의 작품 90여 점이 소개된다. 2016년 3월 27일까지. (02)2153-0000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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