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여당과 정부에서 저출산ㆍ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고자 초중등 학제를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해서 큰 화제가 되었다. 학제 단축으로 취업 시기를 앞당기면 ‘만혼’이 줄어들고,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은 요리 보고~조리 봐도~ 가축이 빨리 새끼 치기를 바라는 축산업자의 조급증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대학 교육이 필요한 직업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니 소모적인 스펙 쌓기를 방지하기 위해 대학 전공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방안 역시 같은 맥락에서 나왔을 것이다. “다 필요 없고, 쇼 미 더 베이비! 아를 낳아도!”
오래 전 독일에 교환학생을 갔을 때의 일이다. 신입생의 나이가 제 각각이었다. 우리나라 나이 기준으로 딱 스물에 맞춘 이들이 드물었다. 자기들은 대개 고등학교 졸업 후 1, 2년 정도의 여유 시간을 가진 뒤 진로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 동안 뭐했냐고 물으니 여행하고, 책 읽고,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생각을 정리했다고. 그들은 12년의 학제를 수료하고도 자신의 인생을 꾸려나갈 방안을 고민하느라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학제를 단축하겠다는 정부가 들으면, 과장 약간 섞어서 까무러칠 일이다. 하지만 독일의 출산율은 2015년 기준 1.44명(206위)으로 한국(1.25명, 220위)보다 높다. 전체적으로 보면 그다지 높은 순위라고 할 수 없지만, 하려는 것은 통계에는 다 담기지 않는 이야기이다.
이어지는 대학교 오리엔테이션에서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아이가 있는 학생”이 교내에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안내하는 항목이 있었던 것이다. 낯선 언어만큼이나 낯설기 짝이 없는 그 정보를, 나는 멍하니 앉아 들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라니! 중, 고, 대를 불문하고 학생의 임신과 출산은 교육권을 박탈하고 구 만리 같은 앞길을 훼방 놓는 ‘사고’에 불과한 것 아니었나?
독일에서 생활하는 동안 종종 아이를 안고 캠퍼스를 가로질러가는 학생들을 보았다. 학교 안에는 학생들이 이용하는 탁아소가 있었다. 부부 단위로 신청할 수 있는 기숙사도 있다고 했다. ‘결혼하고, 출산하고, 양육하면서도’ ‘원한다면 공부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적은 확률 때문에 자주 비가시화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또렷한 현실을 생각한 제도가 어떻게 또 다른 삶을 가능하게 하는지도.
취업과 결혼, 출산의 길목에 선 당사자들은 무엇이 이토록 아이 낳기를 가로막는지 뼈저리게 안다. 불안한 고용 환경, 열악한 출산과 양육 제도, 임산부를 멸시하고 모성을 ‘맘충’으로 죄악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짐승조차 주변 환경이 위험하면 새끼를 치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 이러한 외부 요소들은 모두 건너뛰어 버리고 결혼 시기에만 초점을 맞추니, 이러다 조만간 조혼 풍습이 부활할지도 모르겠다.
한편 임신과 출산이 존재하지 않는 삶을 선택한 이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아마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이들은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국가적 위기를 초래한 원인으로 지목 당하고 ‘만혼’ ‘n포 세대’ ‘이기적인 요즘 것들’로 불린다. 학제를 마치면 취업을 할 것이고, 취업하면 결혼할 것이고, 결혼하면 아이를 낳으리라는 에스컬레이터식 사고방식은 그것을 당연하고 유일한 삶으로 규정하며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다. 개개인은 그저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구를 생산하는 자궁으로 환원된다. 정작 ‘다른 상황’에서 출산하고 양육할 자유는 박탈하면서 말이다.
오랫동안 해외 입양 1위였던 우리나라는 여전히 출산과 양육을 정상 가정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로 전제하고 정책을 펼친다. 앞서 이야기한 독일의 사례처럼,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는 선택들이 공존하는 삶은 아직 상상할 수조차 없다. 이런 식으로는 무엇도 달라지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학제 단축과 같은 헛발질이 아니다.
이진송 ‘계간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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