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8일 조너스 에드워드 솔크(Jonas Edward Salk, 1914~1995)의 100번째 생일이다. 그는 60년 전인 1955년 자신이 개발한 소아마비 백신을 특허권 없이 인류에게 선사한 학자다.
피츠버그대 바이러스연구소장이던 그는 1952년 죽은 바이러스에서 백신을 개발, 동물 실험을 통해 효능을 확인한다. 앞서 개발된 생(生)바이러스 백신 투여로 접종자가 발병해 숨진 일이 있던 터였다. 52년 7월 첫 접종 대상은 지체장애 학생 43명이었다.
이듬해 11월 그는 자신의 아내와 세 아이가 먼저 백신을 접종했다고 발표했고, 비로소 집단 접종 테스트가 시작됐다. 의사를 비롯한 2만 명의 공중보건업계 종사자가 그 작업에 매달려 180만 명이 넘는 자원자에게 백신을 접종했다고 한다. 자신과 가족을 포함해 수백만 명의 목숨이 걸린 전대 미문의 생체실험. 완벽히 검증되지 않은 백신 접종에 그만한 숫자가 응한 것은, 소아마비 공포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었다. 대통령의 긴 이름(드와이트 데이비드 아이젠하워)보다 솔크 백신을 아는 미국 시민이 더 많더라는 54년 갤럽 조사 결과가 있을 만큼 그의 실험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55년 4월 12일, 효능 모니터링 팀장이던 미시건대 토머스 프랜시스 주니어 박사팀은 기자회견을 통해 “(솔크 백신의) 안전성과 효능이 입증됐다”고 발표했다. 소아마비 바이러스와의 길고도 절망적인 싸움 끝에 들려온 낭보에 발표장은 물론이고 온 나라, 전 세계가 환호했다. 그는 직후 방송 인터뷰에서 누가 특허권을 가지느냐는 질문에 “글쎄, 사람들이다. 특허권은 없다. 태양에 특허권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41세의 솔크는 구세주와 같은 명예와 영광을 누렸다.
55년 7월 뉴욕타임스는 “(솔크가) 각광에서 벗어나 연구실로 돌아가고 싶다는 희망을 여러 차례 피력했다”고 썼다. 60년 그는 캘리포니아 라호이아에 솔크 생물학연구소를 설립했다. 하지만 80년 그는 “백신 개발이 내 운명과 동료들과의 관계를 바꿔놨다. 유명인사가 돼버린 나는 더 이상 그들 중 한 명이 아니게 됐다”고 슬퍼하기도 했다. 말년까지 그는 AIDS 백신 개발에 몰두했다고 한다.
그의 생일을 앞둔 10월 24일은 국제로터리클럽이 정한 세계 소아마비의 날이다. WHO에 따르면 2014년 현재 소아마비 발병국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나이지리아 세 곳. 종교와 정치불안 때문에 백신 접종이 원활치 않은 나라들이다.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의 저자 정준호씨는 10월 7일 ‘프레시안’기고문에서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게 한 기생충 치료물질 아버멕틴(Avermectin)과 말라리아 치료제 아르테미시닌(Artemisinin)’이 80년대부터 상용화됐지만, 그 약들의 혜택을 못 받는 감염자가 2013년 현재 149개국 14억 명에 달한다는 안타까운 현실을 전했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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