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에 위치한 하이게이트 공동묘지 ‘자본론’을 집필한 공산주의의 원조 칼 마르크스의 무덤이 위치해 있어 런던의 유명 관광명소 중 하나다. 그런데 이곳에 들어가려면 약 4파운드(약 7,000원)의 입장료를 내야 해 마르크스를 흠모하는 추모객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7일 보도했다.
‘사유재산제 폐지’를 꿈꾸며 노동자 계급의 혁명을 주장했던 마르크스가 죽어서는 관광객들로부터 입장료를 걷고 있는 현실이 죽음까지 돈으로 환산하는 자본주의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게 마르크스 추모객들이 격분하는 이유다.
WSJ에 따르면 하이게이트 관리 재단은 이탈리아 패션기업이 스포츠 용품 판매 홍보를 목적으로 거액의 후원을 해준 대가로 마르크스의 무덤 앞에서 광고 사진을 찍는 것을 허용하고, 하이게이트 묘지의 입구에는 마르크스의 얼굴이 그려진 엽서와 컵 등을 파는 기념품 가게가 밀려드는 손님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올해 여름 하이게이트 묘지를 찾은 마르크스를 추종하는 정치학도 벤 글리니에키(24)는 “이건 마르크스를 모욕하는 일”이라며 “입장료 지불을 거부하기 위해 묘지 밖에 둘러 쳐진 펜스에 뚫린 구멍을 통해 마르크스의 무덤을 봤다”고 말했다.
재단 측은 마르크스 무덤을 구경하려고 하루에 약 200명의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어 묘지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입장료 징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재단 측은 1990년대부터 입장료를 부과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얻은 수익금으로 하이게이트 내에 있는 약 17만 개의 묘지들을 유지, 보수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마르크스 반대주의자들이 간혹 그의 무덤을 훼손하려 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마르크스 지지자들은 하이게이트 묘지를 영국 정부가 국영화해서 묘지 관리비를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편이 입장료를 걷어 마르크스를 모욕하는 일을 멈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비판의 첨병처럼 여겨지는 것은 부정확하다는 시선도 있다. 토지 소유 등 사유재산 폐지를 주장한 마르크스가 정작 1883년 사망하기 직전 현재 가치로 하루에 약 5달러를 지불하며 하이게이트 묘지에 자신의 개인 무덤자리를 구입한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는 노동력이 착취당하지 않고 제대로 된 가치평가를 받길 원했던 것”이라며 “단순히 재화에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으로 자본가에 의한 계급사회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가 사유재산제 폐지를 주장했지만, 묘지 입장료를 받는 것과 무덤 자리를 구입하는 것 등이 모두 마르크스를 모욕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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