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 시행령, 법률 위임 없어 죄형법정주의 위반
대구지법, 당직의사 배치 안해 1심서 벌금 100만원 병원장에 무죄 선고
병원에서 당직의사를 배치하지 않았더라도 의료법에서 위임하지 않은 의료법시행령에 근거해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법률의 위임 없이 시행령에 규정한 당직의료인 배치 기준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처벌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취지다.
대구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김정도 부장판사)는 최근 당직의사를 배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소돼 1심에서 벌금 100만원을 선고 받은 박모 요양병원 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의료법에는 각종 병원에는 당직의료인을 두어야 한다고만 규정할 뿐 당직의료인의 수나 자격에 대한 구체적 내용이 없고 이를 정하는 대통령령 등 하위법규에 위임하는 규정도 없다”며 “의료법시행령에는 당직의료인의 수 등을 규정하고 있지만 모법의 위임이 없으므로 이를 근거로 처벌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된다”고 판시했다.
박씨는 지난해 6월 어느 날 130명이 입원한 요양병원에 당직의사를 병원에 상주시키지 않고 간호사 3명만 배치했다가 적발돼 1심에서 벌금 100만원을 선고 받았다. 당시 피고인 측은 “의사가 병원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 호출에 따라 병원으로 달려가 환자를 볼 수 있으므로 당직의사를 배치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가 유죄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항소심에서는 시행령 자체의 모법위임 여부를 따져 무죄를 받았다.
앞서 지난달 부산지방법원도 박씨와 비슷한 이유로 기소돼 1심에서 벌금 100만원을 선고 받은 B씨에 대해 같은 이유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피고인 측은 “당직의료인으로 간호사 대신 간호조무사를 둔 것은 사실이지만 당직간호사에는 간호조무사도 포함된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재판부는 “의료법 제41조는 각종 병원에 당직의료인을 둬야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수 등에 관해 대통령령이나 하위규범 어디에 위임하지 않았다”며 “모법의 위임을 받지 않은 대통령령으로 형사처벌의 대상을 확장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이 같은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될 경우 관련 법률 개정 없이는 야간이나 공휴일에 의사나 간호사를 배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의료법에 당직의료인의 자격과 수를 구체적으로 정하거나 명시적으로 시행령에 위임하는 것으로 개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구=정광진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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