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는 최근의 사태를 제 3의 인티파다(반 이스라엘 봉기)로 정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또 다른 결심을 할 때다.”(하산 쿠레이시 팔레스타인자치의회ㆍPLC 부대변인)
이스라엘 서안지구 툴카렘 마을에서 지난 5일 수십명의 팔레스타인 청년이 모인 가운데 장례식이 치러졌다. 전날 이스라엘 군이 쏜 총에 맞아 숨진 18세 청년을 추모하는 행사였다. 팔레스타인 국기에 싸인 그의 시신을 고향 발라 마을까지 옮긴 청년들의 손에는 역시 팔레스타인 국기가 들려 있었다. 장례식에 참석한 쿠레이시 PLC 부대변인은 “팔레스타인 당국이 이스라엘과의 안보 협력을 끝내야 한다”며 “당국의 정치적 결단이 있다면 새 인티파다는 언제든 발생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유혈사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양국 정부와 인권단체 등의 집계에 따르면 이달 초부터 25일 현재까지 발생한 유혈 충돌로 팔레스타인인 최소 53명과 이스라엘인 9명이 숨지고 2,000여명이 다쳤다. 중재를 위해 직접 중동행에 나선 케리 장관은 24일 “갈등의 핵심지역인 성전산(聖殿山)의 공식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요르단과 이스라엘이 이 지역의 긴장 완화에 필요한 여러 조치들을 취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지만, 바로 이튿날 이스라엘에선 팔레스타인 여성 1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하는 등 보복성 유혈사태는 끊이지 않고 있다.
예견된 갈등, 평화협상 무산되며 증폭
최근 유혈사태의 직접적 발단이 된 사건은 이슬람교 최대 명절 가운데 하나인 ‘이드 알 아드하’(희생제) 마지막 날 발생했다. 지난달 13일 이스라엘 경찰은 동예루살렘에 위치한 이슬람 성지 ‘알 아크사 사원’에 진입, 이를 막는 팔레스타인 시위대와 크게 충돌했다. 알 아크사 사원은 이슬람 3대 성지 중 한 곳이자, 유대교의 성지 ‘통곡의 벽’이 위치한 성전산에 있다. 두 종교가 모두 양보할 수 없는 성지이기 때문에 오래 간 양국 갈등의 뇌관이 돼 왔다. 과거에는 암묵적 합의를 통해 유대인의 사원 출입이 금지됐지만, 최근 수년간 이스라엘인이 지속적으로 진입을 시도하면서 팔레스타인들과 크고 작은 갈등을 빚었다.
양국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이 무산된 지난해 4월부터 긴장 수위를 높여왔다. 당시 팔레스타인은 평화협상 진행과 별개로 15개 유엔기구ㆍ협약에 독자적으로 가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이스라엘은 이에 반발해 팔레스타인 죄수 석방을 보류하면서 협상 시한을 넘겼다. 협상을 주도한 미국은 기한을 연장하도록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을 설득하며 돌파구 마련에 애썼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협상에 참여한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미국 정부로서는 양측이 만나도록 압력을 넣는 데 한계가 있다”며 “물을 마시는 곳까지 말을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말이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
평화협상이 무산된 지 불과 2개월여 만인 지난해 7월에는 가자지구 교전이 발생해 수천 명이 숨지기도 했다. 50일 간 이어진 교전에서 이스라엘은 가자를 5,230차례 공습했고 가자에서는 이스라엘로 4,590발의 로켓을 쐈다. 기반시설이 대부분 파괴되면서 180만 가자 주민들은 더욱 궁핍해졌고, 이틈을 비집고 수니파 과격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등이 세를 넓혔다.
여기에 올 3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집권하면서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다. 그는 총선 승리 전부터 “팔레스타인 국가는 없다”며 ‘2국가 해법’(양국이 각각 국가를 세워 양측의 분쟁을 끝내자는 이-팔 평화협상안 내용 중 일부) 철회 발언을 하는 등 팔레스타인과 대립각을 세웠다. 이달 1일에는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이스라엘이 정착촌을 추가 건설하며 기존 협상내용을 지키지 않았다”며 팔레스타인 측도 더 이상 합의에 구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SNS 젊은이들 자극, 리더십 부재가 사태 키워
이 같은 상황 속에서 SNS는 양국 국민들을 자극하는 촉매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에게 SNS가 중요한 뉴스제공처가 되면서 이를 보고 분노를 키운 뒤 공격에 나서는 이들이 많아졌다. SNS를 통해 민주화 운동이 확산됐던 지난 2011년 ‘아랍의 봄’ 당시와 최근이 유사하다고 평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370만명이 팔로잉하고 있는 유명 페이스북 뉴스 사이트 ‘쿠즈 뉴스 네트워크’는 이스라엘 서안지구와 가지지구 등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 300여명이 제공하는 소식들을 뉴스로 싣는다. 이는 팔레스타인 기성 언론들이 보도하지 않은 각종 사건사고들을 사진, 영상과 함께 빠르게 전달한다. 대부분은 이스라엘인에 학대 혹은 공격 당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담아 냈다. 쿠즈 뉴스 네트워크에서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는 아메드 유세프는 뉴욕타임스에 “우리의 메시지는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며 “하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돕는 것, 나머지는 이스라엘의 공격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이용자들은 과도나 커터칼 등 소형 무기 사용법과 함께 ‘#인티파다는 진행 중’ ‘#3차 인티파다’ 등 해시태그를 달아 퍼뜨리는 중이다. 팔레스타인 저널리스트 아마드 부데리는 중동전문매체 알 모니터에 “타국 이용자들은 SNS를 가족이나 친구 사진, 영상 게재용으로 이용하고 있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은 조금 다르다”며 “특히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이들은 SNS를 정치적 플래폼으로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분노는 확산하지만 갈등을 속히 해결해 줄 리더가 없어 국민의 불안은 커져만 가는 상황이다. 이달 10일 팔레스타인 정책여론조사센터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압바스 수반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응답한 이들은 73%에 달한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따르면 압바스 수반은 유혈 사태가 악화될 대로 됐던 이달 중순에도 새 상업센터 준공식에 참여하거나 팔레스타인을 국빈 방문한 인도 대통령을 만나 빈축을 샀다.
네타냐후 총리 역시 사태를 되레 악화시키는 발언을 일삼아 국내외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그는 20일 이스라엘에서 열린 세계시오니스트 총회 연설에서 “히틀러는 사실 유대인들을 몰살하길 원치 않았는데, 팔레스타인 출신의 예루살렘 무프티(이슬람 성직자) 하지 아민 알후세이니가 히틀러에게 홀로코스트를 실행하도록 선동했다”고 발언한 데 이어 각료회의에서 팔레스타인 거주지 철거를 시사하기도 했다. 이에 이스라엘인 6,000여명은 24일 수도 텔아비브 시내에서 시위를 열고 네타냐후 총리를 강력 비판했다. 시위를 주도한 단체 ‘피스 나우’의 제하마 갈론은 연설을 통해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 국민의 안전 보장에 실패했고 비전을 제시하지도 못했다”며 “팔레스타인측과의 새 평화회담을 이어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3차 인티파다 가능성 두고 엇갈리는 평가
매일같이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지자 1987년과 2000년에 이어 이번 사태가 ‘3차 인티파다’ 로 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선 팔레스타인의 여론이 심상치 않다는 점에 세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팔레스타인 정책여론조사센터의 최근 조사 결과 응답자 중 42%가 ‘무장투쟁으로만 팔레스타인의 국가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답했다. ‘2국가 해결안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는 응답자도 51%나 됐다. 특히 ‘평화협상을 포기하고 무장 인티파다 시절로 돌아가야 하느냐’는 질문에 57%가 긍정적으로 답해, 3달 전의 49%보다 10%포인트 가까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최근의 유혈사태가 3차 인티파다로 발전할지에 대해 전문가들의 전망은 엇갈린 전망을 내놓고 있다. CNN은 이러한 가능성을 낮게 점치며 “민중봉기가 발생하려면 폭탄 등을 제조할 자원이 필요한데, 2차 인티파다 종료 후 이스라엘은 이러한 인프라를 거의 끊어놨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마지막 인티파다를 겪었던 세대가 현재는 부모가 돼 당시에 발생한 폭력과 죽음, 궁핍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도 새로운 인티파다 발생을 막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후쌈 카더르 전 PLC 의원도 알 모니터를 통해 “사태가 새로운 인티파다로 귀결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새 인티파다의 결과물을 받아들일만한 환경이 아직 마련되지 못했다”고 전했다.
반면 포린어페어스는 “1993년 오슬로협정(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인정하며 공존을 추구한 평화협정) 이후 팔레스타인 영토인 서안지구와 가자 등에 연쇄폭력이 벌어진 적은 없었다”며 “갈등이 저절로 수그러들지 않아 격화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 팔레스타인 정부 관계자도 “팔레스타인이 최근 유엔과 교황청으로부터 국가로 인정받는 등 주권을 확보해가고 있다”며 “이러한 자부심 속에 팔레스타인인들은 완전한 독립을 향한 시도를 지속할 것”이라고 뉴욕타임스에 전했다.
신지후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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