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잠수함과 감시정찰선이 전세계 인터넷망으로 활용되는 해저 광케이블 주변에서 근접 작전활동을 펼치는 것이 포착돼 미 정보기관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5일 전했다. 러시아가 해당 광케이블을 절단해 미국의 정보망을 무력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NYT는 미 정보기관 관계자를 인용해 “러시아 잠수함과 감시정찰선이 북해와 동북아, 미국 근해까지 접근해 주요 광케이블 경로를 따라 작전활동을 하는 것이 눈에 띠게 증가했다:며 “해당 케이블들은 전세계 전자상거래와 정보를 연결하는 생명선”이라고 전했다.
신냉전의 도래라고 할 만큼 러시아는 최근 우크라이나 내전 개입이나 시리아 공습 등 미국과 세계 곳곳에서 마찰을 빚고 있다. 그런데 지난달 러시아 감시정찰선인 얀타르가 쿠바로 향하던 도중 미 동부해안에 매설된 해저 케이블에 접근해 미 정보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당시는 러시아가 시리아 공습을 시작한 시점으로 러시아와 미국 간의 군사적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할 때였다. 미 해군 관계자는 “얀타르는 해저 수십 마일 아래에 있는 케이블을 절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미군은 잠수함과 인공위성, 정찰기 등을 전방위로 동원해 얀타르의 동선을 실시간 추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러시아군이 해저 깊숙한 곳에 놓여 수리하거나 발견하기 어려운 케이블을 절단하는 경우다. 해저 케이블은 1860년대부터 설치되기 시작한 이후 비슷한 경로를 따라 설치됐다. 해저의 안전한 지역을 골라 케이블을 깔다 보니 인접한 지역에 계속 설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해저 케이블의 위치는 공공연하게 노출돼 있어 러시아군이 수리하기 가장 어려운 지점을 손쉽게 노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태평양의 미 해군 잠수함대 사령관인 프레드릭 레게이 소장은 “러시아가 해저 케이블을 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매일 우려하고 있다”며 NYT에 털어놓았다.
전세계 정보망을 잇는 해저 케이블의 전략적 가치는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 해저 케이블은 매초마다 체결되는 금융거래를 포함해 하루에 약 10조달러(약 1경2,000조원) 규모의 전세계 금융자본을 옮기는 것은 물론 전세계 통신 흐름량의 95%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저 케이블의 절단은 금융시장과 통신망 등에 엄청난 혼란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미 국토안보부는 뉴욕과 마이애미, 로스엔젤레스 등 3곳에 매설된 케이블을 ‘중요한 기반시설’목록 중 최상위에 올려놓았다.
해저 케이블은 막대한 정보를 유통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은 러시아의 해킹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이 1971년 10월 일본 근해인 오호츠크해에 잠수함 ‘할리벗’을 보내 소련의 통신용 해저 케이블을 감청한 적이 있는데 러시아도 같은 방식으로 미국에 대한 첩보활동을 벌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러시아 국방부의 심해연구부서 대표인 알렉세이 부릴리세브는 “얀타르는 해양에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고유 설비와 해저를 지날 수 있는 잠수정 기능도 있다”고 현지 언론에 밝힌 바 있다.
러시아 잠수함의 미 해저 케이블 접근은 러시아가 미국과 패권경쟁을 위해 해군 전력 확장에 나서면서 불거지는 문제라고 NYT는 전했다. 러시아는 2020년까지 약 240억달러를 투자해 해군력을 보강할 계획이다. 특히 러시아는 무인 잠수함을 이용해 소형전술 핵폭탄을 적 항구나 기지에 발사하는 기술까지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미국이 러시아의 군사적 야욕을 초기에 무력화하기 위해 해저 케이블 접근 문제를 빌미로 러시아와 무력 충돌을 벌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전 고위군사사령관인 제임스 스타브리디스 미국 터프츠대 외교전문대학원인 플레처스쿨 교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진보된 기술을 바탕으로 얼마나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며 “냉전시대로 회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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