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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진술분석

입력
2015.10.26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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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술서는 범죄 피의자 등이 직접 작성해 사건상황을 설명한 문서다. 하지만 피의자 자술서는 사건 실체와는 거리가 있다. 피의자가 범죄 은폐를 위해 상황을 왜곡하거나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 하기 때문. 따라서 수사는 피의자 자술서 내용을 무너뜨리는 과정이나 마찬가지다. 글보다는 말, 말보다는 얼굴 표정, 신체 반응 같은 생체 현상이 진실에 부합할 가능성이 크기에 수사관들은 말 한마디, 표정 하나까지 주시하며 진술의 허점을 파고 든다.

▦ 진술만 있고 증거는 없는 범죄와 최전선에서 싸우는 곳이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심리분석실이다. 피의자는 대체로 사실과 달리 진술할 때 거짓이 들통날 것에 대한 두려움, 거짓을 꾸며내야 하는 부담감을 느낀다.(사이코패스는 예외다) 심리분석실은 이런 심리가 은연중 드러나는 생리적 반응을 측정ㆍ분석해 진술의 진위 및 신뢰 여부를 판단한다. 거짓말탐지기로 대표되는 심리생리검사, 프로파일링 같은 행동분석 등의 과학수사기법인데 진술분석도 그 하나다.

▦ 진술분석은 진술내용이 진술자가 경험한 사실과 일치하는지를 판단하는 과정이다. 실제 경험내용에 대한 진술과 허위나 상상에 의한 진술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전제로 진행된다. 분석에는 관련자 면담을 통해 확보한 진술, 수사기관이 넘긴 신문조서, 자술서 등이 활용된다. 진술분석관이 피의자나 피해자를 만나 사건에 대해 더 많은 진술을 확보하는 ‘인지면담’을 거치면 진술분석결과는 정확도는 물론 재판에서 증거로 채택될 확률도 높아진다.

▦ 이태원 살인사건 재판이 점점 흥미로워지고 있다. “리가 대변기 칸 문을 열고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 뒤 조씨를 찔렀다.”(패터슨) “패터슨이 대변기 칸에 들어가려다 나오더니 조씨를 찔렀다.”(에드워드 리) 비슷하면서도 차이가 큰 진술이다. ‘문을 열고 사람이 있는지’ 부분은 당사자만 알 수 있는 주관적 해석으로, 패터슨이 자신이 저지른 행위의 주체를 리로 바꿔 진술했다는 게 검찰 결론이다. 둘 중 한 명이 범인인 상황에서 사건을 목격한 타자를 가린다면 리의 진술이 더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검찰은 대검 진술분석팀이 1997년 수사자료를 샅샅이 훑어 새로 추출한 진술분석 결과를 새 증거로 법원에 제출했다. 검찰이 이번엔 과학수사로 패터슨을 옭아맬 수 있을지 주목된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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