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조, 이 단어 귀에 익으실 것이다. 배를 뒤집은 채 둥둥 떠 있는 물고기 사체 무리와 바다에 황토 뿌리는 장면을 뉴스에서 몇 번은 보셨을 테니까. 하지만 해양 수산물 양식 관련된 사람 아니면 심리적으로 상당히 멀게 느껴지실 것이다. 뭔가 큰 문제가 생기긴 했지만 당장 내 자신과는 무관한 그런 상황 말이다. 특히 물고기가 죽는 것은 구제역으로 소 돼지가 죽어나가는 것과는 느낌이 좀 다르니까. 직접 키우는 것은 아니지만 친숙한 대상이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왜 차이가 날까. 사람은 자신의 몸과 비슷한 크기가 죽으면 마음이 언짢아지는 것으로 나는 본다.
심리적으로 먼 것은 나도 다르지 않다. 나, 라고 했지만 우리 거문도 주민들도 비슷할 것이다. 물론, 이곳에도 많은 가두리 양식장이 있다. 주로 참돔 우럭 쥐치 능성어를 키운다. 모 연구소에서는 참치도 키운다. 정치망으로 잡은 1㎏ 정도의 어린 것들을 여러 해 키워서 최근 100㎏까지 커졌다. 이 참치 양식을 위탁 관리하고 있는 이가 가까운 후배라서 나는 이 애들의 성장 과정을 종종 살펴보곤 했다.
이렇게 많은 물고기를 키우는데 왜 적조에 대해서 멀게 느껴졌던 걸까. 이곳은 육지와 멀고 수심이 깊으며 유속도 빠른 청정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 이게 나타났다. 그 동안 연안에서 심하게 발생하면 여기서는 살짝 기미만 보이다가 사라지곤 했는데 제대로 발생해 버린 것이다.
적조는 플랑크톤의 대량 번식으로 인해 바닷물 색깔이 변하는 현상이다. 플랑크톤이 과하게 번식을 하면 물속에 녹아 있는 산소 농도가 낮아지고 더군다나 그게 아가미에 끼여 물고기가 질식해버린다. 죽는 것이다. 이것의 원인은 부영양화, 즉 물에 유기양분이 너무 많아지기 때문으로 과학자들은 본다.
자료를 살펴보면 과거에는 비누나 세제에 포함된 인 성분이 문제가 되었으나 최근에는 영양물질의 과잉 공급 이외에도 연안 개발로 인한 갯벌의 감소가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갯벌에 사는 여러 생물이 미생물이나 플랑크톤을 먹이로 함으로써 평균치를 유지해 주는 자연 정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으나 간척사업 같은 것에 의해 갯벌이 줄어들면서 적조가 더욱 심하게 일어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한다. 이외에도 바람이 적게 불어서 바닷물이 잘 섞이지 않는 경우에도 일어나고 특히 최근에는 엘니뇨 같은 지구 환경 변화에 따른 수온 상승으로 더욱 자주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문도까지 찾아온 적조는 좀처럼 없어지지 않았다. 먼저 쥐치 떼가 죽어나갔고 능성어도 같은 운명이 되었다. 막 죽은 능성어를 싣고 와 주민들에게 싸게 팔기도 했지만 몇 천 마리씩 키우는 거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참치도 견디지 못하고 여러 마리 죽어나갔다. 이 정도 큰 녀석은 이삼백 만원 호가한다고 들었다. 돈도 돈이지만 그 동안 애써 키워왔던 애들이 이렇게 죽어나가는 거, 참 못 볼 장면이다.
날마다 황토를 뿌리고 각 가두리 주인들은 쉬지 않고 자신의 배를 몰고 양식장 주변을 빙빙 돌았다. 스크루에서 뿜어져 나온 파도가 물속에 산소를 공급하고 황토를 넓게 퍼지게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심한 곳에서는 직원들이 교대로 그런 작업을 하며 밤을 새우기도 했다. 하룻밤 자고 나면 수천만 원 어치의 물고기가 죽어 나가는데 어찌 안 그러겠는가. 참치 양식장에서는 아예 배 세 척을 고정 시켜놓고 스크루로 계속 파도를 밀어주었다. 그래도 안 없어지니까 선주 협회에서 주선하여 다들 배를 몰고 나가서 파도를 일으키고 다닌 날도 여러 번이었다. 나도 동료들과 선외기를 몰고 나가 비비고 다녔는데 배가 워낙 작아 다른 배의 파도에 흠뻑 젖고 말았다.
적조는 지금 사라졌다. 그러나 충격은 없어지지 않고 있다. 한 번 왔으니 내년에도, 그 다음 해도 찾아올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환경 재앙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기분이다.
한창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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