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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조선 강제병탄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 저격하다

입력
2015.10.2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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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일본의 제1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행년 69세)
제국 일본의 제1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행년 69세)

조선 독립운동가 안중근이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제국 일본의 제1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행년 69세)를 저격했다. 러시아 재무장관 코코프초프와 회담을 마친 그가 러시아군의 사열을 받고 열차로 돌아가던 참이었다. 흉부 등 급소에 세 발을 맞은 이토는 이송 중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안중근은 1910년 3월 26일 살인 혐의로 사형 당했다. 향년 32세.

조선인에게 저격은 의거였지만 대다수 일본인에게는 흉사였다. 그 명료한 이해 속에 언젠가부터 이설(異說)이 섞이기 시작했다. ‘원흉’ 히로부미가 청일ㆍ청러전쟁에 반대한 온건파 거두였고, 군부 강경세력의 조선 강제병탄 노선에 맞서 영국의 인도 통치방식과 유사한 자치형 식민론자였다는 점 등이 이설의 근거였다. 근대화론자들 중에는 만일 의거가 없었다면 8개월 뒤 한일합방이 되지 않았을지 모르고, 조선의 근대화도 (현실적 정치인이던 이토 덕에) 보다 효율적으로 진행됐으리라 가정하는 이들이 있다.

일본인의 입장에서 의거는 요지부동 ‘흉사’였다. 영국 유학파 출신인 히로부미의 국제 정치적 위상으로 보나, 제국 헌법의 기초를 닦은 근대화의 업적으로 보나, 개항ㆍ개방과 여성 교육 등 개혁 정치인으로서의 행적으로 보나, 일본인에게 그는 위인이었다. 거시적으로 보자면 그의 공백으로 군부의 위세가 드높아졌고 2차대전 패망의 길이 넓어진 면도 있다. 소설가 복거일은 가상 역사소설 ‘비명을 찾아서’에서 그가 106년 전 오늘 죽지 않고 16년을 더 살아 일본이 동북아의 맹주가 되고 2차대전 중에도 연합국에 우호적인 중립노선을 지켜 번영하는 것으로 그렸다. 그 경우 한국은 동화된 2등국으로 남았거나 더 늦게 독립했을 것이다.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역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들어서면 통유리창을 통해 1909년 10월26일 안 의사가 일제 침략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1번 플랫폼 현장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하얼빈=연합뉴스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역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들어서면 통유리창을 통해 1909년 10월26일 안 의사가 일제 침략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1번 플랫폼 현장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하얼빈=연합뉴스

나쓰메 소세키(1867~1916)의 장편 ‘문(門)’이 ‘아사히신문’에 연재된 건 1910년 3~6월이었다. 소심하고 가난한 하급공무원이 불륜으로 친구의 아내를 가로챈 과거의 죄의식을 떨치지 못하고 번민하는 이야기다. 소설 초입에 히로부미가 당한 “뜻밖의 일”일이 약 한 쪽 분량 언급된다. 그런데 주인공의 태도가 뜻밖에 심드렁하고 사뭇 냉소적이다. “나 같은 가난한 월급쟁이는 살해당하는 게 싫지만 이토 씨 같은 사람은 하얼빈에 가서 살해당하는 게 나아”라고도 한다. “왜라니, 이토 씨는 살해당했으니까 역사적으로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거거든. 그냥 죽어보라고, 그렇게는 안 되지”(송태욱 옮김, 현암사)라는 게 이유다. 성대한 국장(國葬)이 치러진 지 반년도 채 안 된 무렵이었다. 그의 소심한 냉소는, 작품으로만 보자면, 히로부미를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권력과 정치에 대한 소시민의 그것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전남과학대 김정훈(일문학) 교수는 ‘문’의 주인공이 저지른 불륜과 죄의식을 메이지 정부의 조선(만주) 침략과 군군주의에 대한 내면의 메타포로 해석한 논문을 2006년 일본 문학잡지 ‘샤카이 분가쿠(社會文學)’에 발표했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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