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의 음악 시장 개입이 어제 오늘의 사안이 아니지만 점차 노골적인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음원 발매가 단발성 이벤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프로그램 취지가 새 음원을 기획하고 발매하는 쪽으로 잇달아 만들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방송사는 음반 기획사나 마찬가지다. 통상 음원이 발매되면 수익의 44%가 기획사와 발매사 몫인데 방송사가 기획사 대신 챙겨가는 구조다.
Mnet의 '언프리티랩스타'는 목적 자체가 음원 발매다. 서바이벌 형태로 여자 래퍼들의 경쟁을 부각시켰지만 컴필레이션 앨범 제작이 큰 틀이다. 신곡의 주인공을 매주 가리고 방송이 끝나면 곧바로 음원을 발표하는 식이다.
Mnet은 제작자에 유통사 역할까지 가능해 때에 따라 음원 수익의 84%를 가져갈 수 있다. 현행 음원 수익의 분배 체계는 제작자 44%, 유통사 40%, 저작권자 10%, 실연자 6%의 비율이다.
유재석의 첫 종편행으로 화제를 모았던 JTBC의 '슈가맨'도 사정은 비슷하다. 잊혀졌던 가수를 재조명하는 컨셉트이지만 프로그램 절반 이상이 옛 노래를 어떻게 '새로' 만드는 지에 할애되고 있다.
20일 정규 편성된 '슈가맨'은 첫 방송 직후 '하얀겨울' '잊었니'의 리메이크 음원을 내놓았다. 추억의 주인공인 미스터투와 현승민(H)은 사실상 지켜만 보는 입장이다. '슈가맨'을 통해 나오는 음원의 수익은 JTBC와 인터파크 44%, 원곡 작곡가와 편곡자 10%, 새로 부른 가수 6% 순으로 돌아간다.
음악을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은 대부분 방송사 배불리기에 사용됐다. MBC '나는 가수다', KBS '불후의 명곡', SBS 'K팝스타', Mnet '쇼미더머니' '슈퍼스타K' 등이 그렇다. 방송 직후 음원 발매로 이어지는 반복에서 예외는 없었다.
특히 MBC는 '나는가수다'의 흥행과 맞물려 2011년 음원 수익만 놓고 보면 종합 2위의 기획사였다.
다만 '슈가맨'처럼 직접적으로 역주행송을 만들어보겠다고 광고하거나 '언프리티랩스타'처럼 앨범 제작의 컨셉트를 빌리진 않았다. 경연이 먼저인 우회적 접근에서 점차 대놓고 장사하겠다는 그림으로 변하고 있는 셈이다.
대중음악계 종사자들이 3~4년 전부터 제기했던 우려의 목소리는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표면상 새로운 수익 창구로 보이지만 시스템 내부를 들여다보면 구조적인 문제에 직면해있다.
한 음악 관계자는 "대규모 자본과 영향력을 이용해 방송사가 음원시장을 독점하는 것 아닌가 걱정했는데 그대로 흘러가고 있다"며 "그렇게 생겨난 수익이 새로운 음악 창작을 위한 재투자로 이어지지 않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또 막대한 투자를 통해 가수를 데뷔시키고 앨범을 만드는 음반 기획사들에겐 상대적 박탈감을 주기도 한다. 태생부터 인기 예능 프로그램을 등에 업고 엄청난 홍보효과를 누렸으니 다른 음원과 주어진 경쟁력 자체가 다르다는 설명이다. 큰 방송사 조직이 음원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는 것은 대기업의 문어발 경영과 무엇이 다르냐는 하소연도 흘러나온다.
그럼에도 쉽게 방송사들이 이러한 행태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방송 제작이란 명분으로 가수와 작곡가를 저렴한 몸값으로 섭외하고 70년 보장된 저작인접권은 매력적인 열매로 통한다.
또 다른 음악 관계자는 "분야별 경계가 허물어지는 시대에서 무조건 비판하는 게 아니다. 문화 사업은 투자의 선순환이 중요한데 방송사들이 과연 음원 사업에 뚜렷한 로드맵을 갖고 접근하고 있나"라며 "단지 광고 매출이 줄어든다고 음악을 하나의 단편적 사업 수단으로 여기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했다.
심재걸 기자 shim@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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