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키우기 힘든 사회다. 오죽하면, ‘출산파업’이란 말이 나돌 지경이겠는가. 실제로 세계 최저의 출산율 기록이 이어지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육아에 드는 시간과 비용 부담 때문이다. 만 3~5세의 유아교육에 들어가는 돈만 하더라도 여간 큰 짐이 아니다. 대학 등록금에 이어 가계경제를 파탄으로 내모는 주범으로 지목될 정도다. 아이들을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 나서 느끼는 홀가분한 기분이 결코 이상한 게 아닌 것이다.
이에 정부도 2013년 “유아교육 국가 완전책임제 실현”을 정책 목표로 설정하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유아교육 기회를 확대하고, 학부모 교육비 부담을 획기적으로 경감시키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교육부가 내놓은 유아교육 발전계획을 보면, 무언가 근본적인 고민과 진정성이 결여되어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보편적 무상교육을 지향하고 있다지만, 유아교육의 체질 개선을 위한 전략과 정책 의지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유아교육은 “공ㆍ사립 유아교육기관의 불균형”이라는 체질상의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유치원의 경우 공립 대 사립 원아 비율이 2대 8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7대 3)에 비해 완전 역전현상을 보이고 있다. 어린이집은 사정이 더 열악해 2014년 현재 국공립 원아수가 16%에 불과하다. 이것이 과중한 유아교육비 부담으로 이어지는 것이며, 교사의 직무만족도와 교육의 질 등을 떨어뜨리는 기본적인 제약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학부모는 당연히 비용이 저렴하고 더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국공립 시설을 선호한다. 문제는 양육자가 선호하는 이런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여 집 근처의 대체시설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대개 이윤 동기가 강한 사립 유아교육기관들로 특별히 도시지역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에 오래 전부터 공립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확대해달라는 요구가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정부는 이 문제에 관한 한 이상하리만치 소극적으로 대응해왔다.
그런 가운데 2013년 법령 개정을 통해 “공ㆍ사립유치원 설치 비율 균형 개선” 차원의 전향적인 조치를 취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도시개발이나 택지개발사업 등 인구가 유입되어 초등학교를 신설할 경우 정원의 4분의 1이상에 해당하는 수의 유아를 수용할 수 있는 공립유치원 설립 계획을 포함하도록 강제한 것이다. 그 결과 2015년 3월 현재 41개 공립단설유치원이 신설되어 2014년(총 228개 기관) 대비 18% 증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정부는 최근 또다시 오락가락하는 행보로 빈축을 사고 있다. 지난달 교육부가 공립유치원 설립 기준을 초등학교 정원의 “4분의 1이상”에서 “8분의 1이상”으로 후퇴시키는 유아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예컨대 30학급 규모의 초등학교가 들어설 경우 8학급 이상의 공립단설유치원 신설에서 4학급 규모의 병설유치원으로 대체가 가능하다. 재정 사정과 사립 측의 반발 등을 이유로 역주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봇물을 이루는 이유다.
이런 점들은 정부가 누리과정을 도입하면서 시ㆍ도교육청에 재정 책임을 떠넘기는 데서 어느 정도 예견되었다. 유치원과 보육기관 통합이라는 의미 있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보육예산을 제대로 주지 않아 17개 시ㆍ도교육청을 빚더미에 올라앉게 한 것이다. 이리저리 둘러대고 있지만, 교육부가 유아교육 발전을 위해 가야 할 길을 잘 알면서도 재정 책임만큼은 극력 피하려 하기 때문이다.
국가 간 비교 가능한 2011년 현재 우리나라의 3세 이상 취학전 교육비 지출은 GDP 대비 0.3%로 OECD 평균(0.6%)의 절반 수준이다. 게다가 정부 부담은 55.2%로 OECD 평균(85%)에 크게 못 미친다. “유아교육 국가 완전책임제 실현”이 ‘말잔치’인 게 현실이다. 늦었지만 유아교육재정의 확충과 함께 그 체질 개선에 힘을 모을 때다. 유아교육기관 구조개혁을 통해 국공립 50% 이상, 공공형유치원 등 정부지원형 30% 안팎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김용일 한국해양대 교직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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