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세 시장서 월세 비중 50% 육박
공공임대주택 건설 장기계획 필수
서민층 위해 월세 세액공제 확대를
월세살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매달 알토란 같은 돈이 월급에서 빠져나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알 것이다. 벤처 붐이 일던 십 수년 전 주식에서 돈을 탕진한 뒤 집을 팔아 치우고 월세를 살았던 적이 있다. 전세금 1억원에 월세 50만원이었으니 반(半)전세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1년에 총 600만원씩 2년간 1,200만원을 집주인에게 지불했다. 많지 않던 연봉에 이 정도의 규모의 돈이 빠져나가도 버거웠다.
미국에서 연수를 하던 시절에도 월세를 살았다. 월 1,050달러씩 연간 1만2,600달러를 냈다. 서민아파트인데도 그랬다. 매달 납부마감 날에서 하루라도 늦으면 벌금이 곧바로 부과되기 때문에 깜빡 잊은 경우에는 밤중에 봉투에 동호수를 적고 수표를 넣어 관리사무소 문틈으로 밀어 넣었다. 미국은 전세 제도가 없어서인지 처음부터 월세가 당연한 듯 느껴졌다.
전세는 우리나라에만 있다. 강화도조약 이후 수도권 지역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이 같은 제도가 생겼다니 역사가 150년이나 된다. 과거 집주인들은 집 가격의 절반 정도에 전세를 줘도 만족스러워했다. 금리도 높았거니와 집값이 늘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래서 전세를 끼고 집을 여러 채 사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집값이 올라 충분히 재테크가 됐다. 세입자 역시 월세보다 부담 적은 전세를 통해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집값이 크게 오르지 않는 데다 초저금리 상황이 오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전셋값이 폭등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것이다. 전셋값은 2009년 3월 이후 지금까지 6년이 넘도록 매달 오르기만 했고, 상승률이 무려 50%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일부에서는 2년 단위 재계약에서 1억원 이상을 요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서울지역 전셋값의 4분의 1이 3억원을 넘는다.
그런 전세도 종말을 고할 것 같다. 집주인들이 월세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전월세 시장에서 월세 비중이 50%에 육박하고 있다. 2020년 께면 월세 비중이 70% 이상이 될 것이라고 한다. 월세 시대로 가면 서민층은 적어도 수입의 3분의 1 이상을 주거비로 부담해야 한다. 중산층 이상이라면 집이 있거나 월세나 전세를 견딜 완충장치가 있겠지만, 저소득층은 보호막 자체가 없다. 세입자들의 주거비 부담이 늘어나면 소비 침체로 이어진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미친 전셋값’을 고령화, 일자리감소, 소득분배 악화와 더불어 경기침체의 4대 주범으로 꼽을 정도다.
문제는 정부 대책이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후 모두 11번의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부동산시장 활성화에 골몰하는 사이, 오히려 전월세 시장에는 악영향을 미친 것이다. 전월세 대책도 몇 차례 들고 나왔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사실 방법은 하나뿐이다. 공공임대주택을 꾸준히 짓는 것밖에 없다.
지난해 기준 장기공공임대주택 수는 82만호로 전체 주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5%에 불과하다. 11.5%에 이르는 OECD국가 평균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 덴마크 등은 20~30% 수준이다. 정부도 공공임대주택 확충을 다각도로 추진하고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노후 단독주택을 재건축ㆍ리모델링해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방안 등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할 때다. 서민들은 높은 전월세를 감당하느라 허리가 휘고 거리에 나앉을 지경이다. 전월세 대책은 이제 단순히 주거문제를 넘어 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우선 가능한 것은 월세에 대한 세액공제 확대다. 지금은 월 50만원씩 연 600만원을 월세로 낼 때 연간 10%인 60만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공공임대주택이 충분히 공급될 때까지는 한시적으로라도 세액공제를 확대해 서민들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세액공제 확대는 직접적인 효과가 있지만 모럴해저드,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이것저것 눈치 볼 때가 아니다. 때로는 대증요법도 필요하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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