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 액면가 최고 5.5배 올려 게임
마카오 등서 변칙 룰 적용해 도박
조폭 주선 정킷방 등서 101억 날려
칩의 2배로 정산하는 더블게임과 칩의 5.5배로 정산하는 홍콩달러게임. 도박 회전율이 짧게는 30초면 끝나는 바카라(Baccarat) 도박을 하면서 이 두 가지 변형 룰을 적용하면 30초에 최대 10억원을 잃을 수 있다. 100억원대 도박을 벌인 혐의로 21일 구속 기소된 정운호(50)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는 이처럼 변칙 룰까지 적용한 극도로 사행성 짙은 도박에 빠졌던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정 대표는 2012년 3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총 7회에 걸쳐서 광주송정리파 이모(39ㆍ구속 기소)씨 등 폭력조직의 주선으로 마카오, 필리핀 등지의 ‘정킷방’(카지노 VIP룸)에서 도박을 즐겼다. 101억원을 도박에 탕진하고 일부 딴 돈마저 모두 날린 정 대표는 더블게임, 홍콩달러게임 등 변칙 룰이 적용된 도박판에만 77억원을 쏟아 부은 것으로 조사됐다.
더블게임이란 칩의 액면금액에 2배를 곱한 금액으로 정산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를 위해 도박을 알선한 브로커 이씨와 정 대표가 카지노 측과는 별개로 칩을 정산하기로 사전에 합의했다. 예를 들어 정 대표가 이씨가 빌려준 100만원 상당의 칩을 모두 잃었을 경우 200만원을 갚는 식이다. 카지노와 이씨 측이 수익 또는 손실을 반반으로 나눴다고 가정할 경우 정 대표가 잃은 돈 200만원 가운데 150만원을 이씨가 챙기게 된다. 물론 반대로 정 대표가 100만원을 따면 200만원을 돌려 받을 수 있다. 2012년 9월 마카오 S호텔 카지노에서 7억원을 잃은 정 대표는 지난해 8월 다시 마카오를 찾은 3차 원정도박 때부터 더블게임 방식을 적용했다. 마카오 카지노의 1회 최고 베팅액은 3억원이므로 더블게임 방식으로 최대 6억원까지 판돈을 올린 셈이다.
정 대표가 주로 했던 게임은 ‘카지노 게임의 왕’으로 불리는 바카라였다. 플레이어 또는 뱅커 중 한 쪽을 택해 돈을 걸면 각각 카드 2, 3장을 합산한 끝자리수가 9에 가까운 쪽이 이기는 방식이다. 검찰 관계자는 “둘 중 한 쪽이 이기는 방식이고 짧으면 30초 만에 한 판이 끝나기 때문에 사행성이 아주 강한 게임”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지난해 9월 마카오 G호텔 카지노에서 더블게임을 적용한 바카라 도박으로 35억원을 잃은 것으로 조사됐다.
극단에 치달은 정 대표의 도박행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음달 필리핀 마닐라 S호텔 카지노를 찾은 그는 브로커와 합의 하에 홍콩달러게임 방식을 적용했다가 14억원을 더 잃었다. 홍콩달러게임이란 카지노에서 필리핀 화폐 페소로 칩을 교환한 후 정산할 때는 환율이 5.5배 차이가 나는 홍콩달러를 적용하는 방식이다. 필리핀 카지노 1회 최고 베팅액이 2억원임을 감안하면 최대 판돈은 10억원이 넘는다. 필리핀에서 잃은 14억원은 정 대표가 앞서 다른 도박판에서 딴 돈이었다. 현지 브로커로부터 돈 대신 칩으로 교환해 주겠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것이다.
더블게임이나 홍콩달러게임 등 변칙 룰을 적용한 것은 도박장을 개설한 조폭의 잇속과 도박꾼의 한탕주의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검찰 관계자는 “조폭 입장에서는 칩을 적게 교환하는 것이 수수료나 보증금을 덜 물면서도 큰 돈을 가져올 수 있고 도박꾼 입장에서는 그 동안 잃은 돈을 한번에 만회해야 한다는 헛된 기대를 품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보통 도박 혐의 액수는 매회 걸린 판돈의 총합으로 산정하지만 이번 기업인 원정도박의 경우 그 액수가 천문학적이라 교환한 카지노 칩의 규모로만 산정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심재철)는 이날 필리핀과 베트남 등지에서 각각 35억원, 20억원가량의 원정도박을 한 혐의(상습도박)로 경비용역업체 H사 대표 한모(65)씨와 금융투자업체 P사 대표 조모(44)씨에게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조원일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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