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 화백 사망 소식이 알려진 가운데, 그녀의 이력에 대한 궁금증이 높아지고 있다.
천경자 화백은 1924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났고 의대에 가라는 부친의 권고를 뿌리치고 1941년 경여자미술전문학교로 유학을 갔다. 1924년 제22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외할아버지를 그린 '조부'가 입선, 1943년 제2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외할머니를 그린 졸업 작품 '노부'가 입선하며 화단에 들어섰다.
1952년 당시 피란지 부산에서 연 개인전에 뱀 그림 '생태'로 스타작가 대열에 들어섰다. 고인의 작품세계에서 중심적인 이미지로 떠오르는 꽃과 여인은 일반적인 관점에서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통한다.
그러다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 미인도 위작 사건이 불거졌고, 당시 천경자 화백은 "내가 낳은 자식을 내가 몰라보는 일은 절대 없다"고 절필선언하며 미국으로 떠난 뒤 1998년 11월 일시 귀국해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했다.
그러다 2003년 봄 뇌출혈로 병상에 누운 뒤 외부와의 접촉이 끊겼고, 지난해 대한민국예술원은 천경자 화백에 지급하던 수당 180만원을 중단하며 논란이 일었다.
한편 22일 한 매체는 그동안 생사 여부 논란이 끊이질 않던 천경자 화백이 향년 91세 나이로 이미 두달 전 사망한 사실을 보도했다.
사진=천경자 화백(연합뉴스)
온라인뉴스팀 onnews@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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