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김주희] "2013년을 기억해라, 재훈아."
두산 포수 최재훈(26)은 21일 NC와 플레이오프 3차전을 앞두고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 1시에는 숙소를 나와 근처 공원을 걸었다. 혼자 하늘을 보고 앉아서는 "2013년을 기억해라"고 되뇌었다. 한참을 혼자 거닐던 그는 새벽 3시쯤이 돼서야 숙소로 돌아갔다.
이날 오후 잠실구장에서 만난 최재훈은 "밤에 잠도 못 잤다"며 걱정을 늘어 놓았다. 3차전에 그는 9번 타자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이번 포스트시즌 들어 첫 선발 출장이다.
두산은 지난 19일 NC와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포수 양의지(27)가 엄지 발가락에 부상을 당하면서 3차전부터 최재훈이 선발 마스크를 쓰게 됐다. '백업' 역할을 맡아왔던 최재훈은 갑작스럽게 커진 역할에 부담감을 숨기지 못했다. 특히 그는 올 시즌 부진으로 71경기에 출장해 타율 0.152(99타수 15안타) 7타점에 머물렀다. 성적이 떨어지면서 자신감도 같이 사라졌다. 그는 "야구가 안 되니까 자꾸 고개를 숙이게 되고, 눈치를 보고, 숨고 싶더라.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부담감에 움츠러든 그를 일으켜 세운 건 선배 양의지다. 최재훈은 "의지 형과 룸메이트이고, 원정 버스에선 항상 옆자리에 타 이야기를 많이 한다"며 "내가 야구가 안 돼 주눅이 들어있으면 선배가 늘 '할 수 있다. 왜 자꾸 눈치를 보느냐'고 이야기를 해주신다"고 말했다. 같은 포지션을 놓고 경쟁을 벌이지만 누구보다 서로를 응원한다. 최재훈은 "정말 잘 하고 싶은데 안 된다고 말씀을 드리면 의지 형이 '나도 네가 없었으면 못했을 거다. 네가 나보다 수비는 더 잘하지 않냐. 너에게 안 밀리려고 나도 정말 준비를 많이 했다. 너도 자신 있게 하라'고 하시더라"며 고마워했다. 선배의 조언은 더 큰 힘이 된다. 최재훈은 "의지 형이 이야기를 해주신 게 있으니 웃으면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재훈은 양의지가 허리 부상을 당했던 2013년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결승 투런을 때려내는 등 포스트시즌 스타로 떠올랐다. '그때도 잘 했으니 올해도 잘 할 것이다'는 주위의 기대는 부담이 되지만, 스스로도 자신감을 되찾기 위해 자꾸만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려는 이유다.
'안방 마님'인 그가 살아나면 팀도 더욱 힘을 받는다. 최재훈은 "의지 형의 빈 자리를 얼마나 채울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선배가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내가 잘 해야 한다"며 "자신 있게 하겠다. '놀다 온다'는 생각으로 편하게 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그는 3차전에서 3타수 1안타 1득점을 기록했다.
사진=두산 최재훈.
김주희 기자 juhee@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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