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했는데, 두 끼를 먹고 났더니 애매하게 남았다. 처치 곤란이다. 양을 잘 맞추는 편인데도, 가끔 이럴 때가 있다. 그냥 뒀다간 말라 붙을 것 같아 전기밥솥 코드를 뽑는다. 날이 덥지 않은 게 다행이다. 그러다가 다음 식사 때가 온다. 식은 밥을 새 밥에 섞지 말라는 동학의 교시(敎示)가 있었던가. 딱히 그래서는 아니지만, 김이 빠져나간 밥을 새 밥에 섞는 걸 저어한 지 꽤 됐다. 미신이라 일축할 수 없다. 고민 끝에 새 밥을 안친 후, 식은 밥으로 식사를 시작한다. 평소보다 수저질 속도를 늦춘다. 느릿느릿 속이 차오르고 밥솥이 ‘취사’에서 ‘보온’으로 전환하며 김을 뿜어낸다. 식은 밥은 거의 비워졌다. 배도 적당히 부르다. 그래도 밥솥에서 밥을 퍼 몇 숟갈이나마 더 먹는다. 밥이 남았을 때 더 먹지 않으려 했던 까닭과 남은 밥을 처리하고 나서는 배가 부름에도 굳이 새 밥을 먹으려 한 이유를 스스로 따져본다. 앞의 것이 과거라면 뒤의 것은 미래? 그렇다면, 앞의 것은 미련이고 뒤의 것은 기대라 비약할 수도 있을까. 앞의 것은 떠나보내는 것이고 뒤의 것은 다시 맞이하는 것이라 여기고 있는 걸까. 보내는 서늘함, 새로 맞는 뜨거움이라 말한다면 우습게 들리려나. 말장난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기분은 실로 그렇다. 함부로 버리지 못하고, 느긋하고 따사롭게 새로 맞으려는 심정이 장난만은 아니리라 믿는다.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