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한 머니익스트림] 최근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의 필요성에 대한 논란이 재점화 되고 있다. 리디노미네이션이란 화폐가치의 변동 없이 동일한 비율로 화폐의 단위만을 낮추는 조치다. 경제의 대외적 위상과 내수부양 효과 등을 위해서 새로운 화폐단위의 도입을 주장하는 측과 화폐단위 변경은 최후의 수단으로 경제의 체질개선이 우선이라는 반대 입장이 맞서고 있다. 양측의 주장에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화폐단위변경으로 인해 유발되는 소비자의 가격에 대한 착시현상의 발생에 대해서는 같은 입장이다.
이미 많은 커피전문점에서는 4,500원짜리 커피 한 잔의 가격을 4.5로 표시하고 있다. 이는 가격에 대한 소비자의 경계심을 낮추기 위한 판매기법의 하나로 숫자가 유발하는 고객의 심리적 변화를 겨냥하는 숫자마케팅의 일종이다. 예를 들면 2달러, 4달러인 2종류의 펜이 있다. 4달러짜리를 3.99달러로 할인하니 학생들은 2달러 보다 비싼 3.99달러 펜을 구매한다. 다시 2달러짜리만 1.99달러로 할인해 보니 놀랍게도 4달러짜리 펜을 구입하는 학생의 비율이 감소했다. 단 1센트의 차이에 구매의 선택이 바뀐 것이다. 이렇듯 소비자들은 숫자의 앞자리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가격의 앞자리가 달라지게 되면 가격에 대한 수용도가 높아져 싸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기업들이 '9'라는 숫자를 끝수로 표기하는 단수가격에 집착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화폐단위의 변경이 소비자의 심리적 가치설정에 변화를 가져온다는 가설이 현실적으로 검증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기업들은 가격 표기뿐만 아니라 숫자를 활용해 브랜드나 제품의 특성 등을 나타내는데 숫자 네이밍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숫자는 글자보다 정보 및 이미지 전달력이 빠르며 제품의 특징을 함축적으로 상징하고 신뢰를 높이는 장점이 있다. 알파뉴메릭 차종 모델방식인 'K시리즈', 제품수를 강조한 '베스킨라빈스 31', 20~80세까지의 세대를 아우르는 '2080시리즈 치약', 비타민 함유량을 표기한 '비타500', 특정날짜를 상징하는 '빼빼로 데이' 등 숫자마케팅을 통한 히트상품의 성공사례가 상당수다.
그러나 숫자마케팅의 지향점은 하나의 이벤트가 아닌 고객의 가치증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고객을 이익의 대상 아니라 관계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기업철학이 투영된 컨셉트가 중요하다. 기업이 소비자의 심리적 착시현상만을 기대하는 근시안적인 마케팅 성과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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