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콩쿠르는 어릴 적부터 꿈이었고, 드디어 그 꿈이 이뤄졌다.”
피아니스트 조성진(21)이 세계 최고 권위의 폴란드 국제 쇼팽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다. 지난 5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에서 우승한 임지영(21)과 함께 세계 주요 음악 콩쿠르 1위를 한국인이 석권하는 겹경사를 맞았다.
프레데릭 쇼팽 협회는 21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17회 국제 쇼팽 피아노 콩쿠르 결선의 최종 심사 결과 조성진이 1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폴란드 작곡가 프레데릭 쇼팽을 기려 1927년 시작된 쇼팽 콩쿠르는 러시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와 더불어 세계 3대 음악 콩쿠르로 꼽히는 최고 권위의 대회다. 쇼팽의 고향인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5년에 한번씩 열리며, 16∼30세의 연주자들이 쇼팽의 작품만으로 실력을 겨룬다. 1위 상금은 3만 유로(한화 약 3,856만원)과 금메달이며, 전세계 각지에서 연주 기회도 얻게 된다.
올해는 예선에 참가한 27개국, 160명 가운데 20개국, 78명이 본선에 올랐다. 이 가운데 조성진을 비롯해 3차에 걸친 경연을 통과한 8개국, 10명이 결선에서 경쟁했다.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결선에 오른 조성진은 18일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으로 가장 먼저 결선 연주를 마쳤다.
조성진은 심사결과가 발표된 후 “어렸을 때부터 꿈 꿔온 대회라 (우승을) 믿을 수 없다. 앞으로 해야 할 연주 때문에 걱정이 앞선다”고 소감을 밝혔다. 결과 발표에 앞서 프레데릭 쇼팽 협회와 한 인터뷰에서 그는 “쇼팽 콩쿠르는 어릴 적부터 꿈이었고, 11살에 참가하기로 마음먹었다”며 “(쇼팽의 작품은) 기품 있고, 극적이고, 시적이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음악”이라고 말했다. “결선에서 많이 긴장했지만, 이번 콩쿠르에 참가하게 돼 기뻤고, 또 즐겼다”고도 털어놨다. “콩쿠르 준비를 위해 한동안 쇼팽만 연주했다. 몇 년에 걸쳐 한 작곡가의 작품만 연주하면 지루할 수도 있지만 쇼팽을 연주하면서 이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쇼팽의 음악을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6살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조성진은 신수정 서울대 음대 명예교수과 박숙련 순천대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2005년 금호영재콘서트를 통해 데뷔한 후 2008년 국제 청소년 쇼팽 콩쿠르 최연소 우승, 1년 뒤인 2009년 곧바로 ‘성인 체급’으로 올려 출전한 하마마쓰 국제 피아노 콩쿠르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며 국제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나이를 뛰어넘는 그의 음악세계에 거장 로린 마젤과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이 반해 모두 2009년 이후 수 차례 협연자로 그를 지목했다. 겸손하면서도 대범한 성격의 조성진은 큰 무대에서 긴장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데, 많은 무대 경험과 이런 천성이 콩쿠르 결선에서 다른 연주자들과의 ‘확연한 차이’를 만들었다는 평가다.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는 “조성진의 연주를 처음 들을 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천재라고 느꼈다. 음을 만드는 감각이 특출하고 연주를 이끄는 면에 있어서도 신선하고 동시에 성숙한 면모를 갖고 있다. 이번 콩쿠르 결선 연주는 디테일 표현부터 전체적으로 곡을 이끄는 모습까지 대가의 모습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김주영 클래식평론가 역시 “타고난 음악가들이 그렇듯 조성진은 피아노를 쉽게 친다. 피아노 연주는 소리 균형을 잡는 게 핵심인데 조성진은 이 방법이 상당히 어른스럽고 세련됐다. 음악성이 원만해 소화할 수 있는 작곡가의 스케일도 크다”고 소개했다.
조성진은 2011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3위에 이어 지난해에는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국제 피아노 콩쿠르 3위를 차지했고, 러시아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러시아내셔널 오케스트라, 라디오프랑스 오케스트라, 베를린방송교향악단, 뮌헨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체코필하모닉 오케스트라,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과 협연했다. 예원학교와 서울예고를 거쳐 2012년부터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에서 미셸 베로프를 사사하고 있다.
쇼팽 콩쿠르에서 한국인 연주자가 결선에 진출한 것은 2005년 임동민, 임동혁, 손열음 이후 10년 만이다. 이 콩쿠르에서 한국인 역대 최고 성적은 임동민, 임동혁 형제의 공동 3위. 앞서 2000년 김정원이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본선에 올랐고, 2010년 김다솔, 서형민이 본선 2차에 진출했었다.
이번 콩쿠르 입상자들은 21∼23일 바르샤바 필하모닉 콘서트홀에서 갈라 콘서트를 한 뒤 내년 초까지 유럽과 아시아를 돌며 연주한다. 한국에서도 내년 2월 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쇼팽 콩쿠르 우승자와 입상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갈라 콘서트가 국내 처음으로 열린다. 야체크 카스프치크의 지휘로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 조성진의 콩쿠르 실황 연주는 다음달 도이치그라모폰에서 음반으로 발매될 예정이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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