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마카오 등 카지노 룸 빌려 재력가들 도박 장소로 제공
김태촌 양아들 휴대폰서 단서
기업인·조폭들 줄구속… 수사 확대
삼성 선수 2명, 비시즌 홍콩행 확인
국내 조직폭력배가 외국 고급 카지노 리조트의 룸을 빌려 한국의 재력가들에게 원정 도박장소로 제공하는 이른바 ‘정킷방’ 수사가 확대되고 있다. 기업인에 한정돼 있던 수사망이 프로야구 선수들로 넓혀졌고, 도박장소도 홍콩 마카오뿐 아니라 필리핀ㆍ베트남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심재철)에 따르면, 이번 수사는 폭력조직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사망)씨의 양아들로 알려진 김모(42ㆍ수감 중)씨 휴대폰이 단서가 됐다. 검찰은 지난 3월 그를 200억원대 회삿돈 횡령 혐의로 구속했는데, 압수한 그의 휴대폰에서 누군가에게 “도박 빚을 빨리 갚으라”고 독촉하는 문자 메시지가 발견됐다. 휴대폰에는 관련 문서를 찍어둔 사진파일까지 무더기로 보관돼 있었다. ‘조폭 수사’를 담당하는 강력부가 뜻하지 않게 ‘원정도박 리스트’를 확보한 것이다.
초기 수사는 기업인을 비롯한 국내 고객 명단을 가진 조폭들에게 집중됐다. 지난 6월 조폭 출신인 정킷방 운영업자 9명과 브로커 2명이 도박장소 개설 등 혐의로 줄줄이 검거됐다. 이들의 조직은 ‘학동파’와 ‘영산포파’, ‘광주송정리파’, ‘영등포중앙파’ 등으로 다양했다. 김태촌의 양아들 김씨 역시 마카오에 도박장소를 개설한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
수사는 해외로 도주한 광주 송정리파 행동대원 이모(39)씨가 지난달 22일 체포되면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마카오 호텔 4곳의 정킷방을 거느린 이씨의 단골 손님 중에 기업인들이 다수 포함돼 있던 것이다. 먼저 화장품 업체인 네이처 리퍼블릭의 정운호(50) 대표가 구속됐고, 울산의 해운업체 K사 대표 문모(56)씨는 이날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됐다. 문씨는 2013~14년 마카오에서 최소 200억원대 도박판을 벌인 혐의를 받고 있다. 경기 광주시의 K골프장 소유주인 맹모(87)씨도 수십억원대 도박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검찰 주변에서는 앞으로 기업인들이 줄소환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수사에서 현재까지 입건된 이들은 모두 26명이다.
검찰 관계자는 “원정 도박이 국내 조폭들의 새로운 자금원이 되고 있다”며 “국내에서 빚을 독촉하는 과정에서 공갈, 협박이 동원돼 조폭이 관여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국내 조폭과 외국 카지노의 공생 관계는 앞으로 더 기승을 부릴 것이란 전망이다. 한 카지노업계 인사는 “중국 당국이 자국인들의 국내외 도박을 단속하면서, 동남아와 마카오의 카지노 업계는 한국인을 주된 고객으로 끌어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별개로, 경찰은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선수 2명의 마카오 원정도박 혐의에 대해 수사를 진행 중이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이날 “해당 선수들의 출입국기록을 확인한 결과, 이들이 비시즌 중에 홍콩에 다녀온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들과 마카오 정킷방을 운영하는 조폭의 전화통화 내역, ‘환치기’에 사용된 은행 계좌 정보를 분석하고 있다.
김정우기자 wookim@hankookilbo.com
안아람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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