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미국의 해군 전략가 앨프리드 머핸은 “해양을 장악하는 자가 세계질서의 패권을 장악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해양은 거대한 공용도로이자 한 공간과 다른 공간의 연결통로이기 때문에 해양력은 국가의 경제적 번영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군사력을 사용하는데 있어 매우 유리한 전략적 유연성을 제공할 수 있다. 여기서 전략적 유연성은 공격에서 시간과 공간을 선택할 수 있는 이점을 의미한다. 또 공용도로 또는 연결통로로서 바다의 기능은 병력과 무기, 지원물자를 제시간에 운송해 타격능력을 집중시키고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것이다. 결국 해양을 장악한 자는 자신의 뜻대로 시간과 공간, 물리력을 집중시킬 수 있고 내륙 깊숙이 지속적으로 전투력을 보충할 수 있다. 반면 해상 전력이 열세인 쪽에서는 어디로 적이 공격해 들어올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 물리력이 분산되며 전쟁에 필요한 각종 물자의 지원도 자신의 점유한 영토 내의 가용자원으로 한정된다.
머핸이 강조하는 해양의 중요성은 결국 공간의 중요성에 대한 지적이다. 전쟁과 경제적 번영의 성패는 결국 지상에서의 결전 또는 경쟁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바다는 이 지상 공간에서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원 공간으로서의 성격을 가진다.
그런데 여기에 새로운 공간이 추가되면 이 공간들 간의 역학관계는 질적으로 변화한다. 하늘 공간이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새로운 공간으로 등장한다. 전쟁의 승패는 하늘 공간의 장악능력에 의해 판가름 나게 됐다. 제공권은 제해권을 보장하고 상륙전의 성공여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다시 지상결전에 중요한 투입변수가 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양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본격적으로 하늘 공간이 인간의 삶의 공간이 됐다는 것이다. 정찰, 정보 수집을 위한 비행기가 가장 먼저 등장했으며 이후 지상과 해상, 수중 공격을 위한 폭격기 등이 등장하게 되고 다시 이들 폭격기의 활동을 보호하기 위해 하늘 공간의 장악을 위한 전투기가 나타나게 되면서 오늘날 공군전력이 완성됐다.
최근 새롭게 등장한 사이버 테러리즘의 문제는 이런 차원에서 네 번째 새로운 공간으로 사이버 공간이 등장하게 됐다는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 궁극적으로 국가의 존망을 결정할 전쟁과 경제적 번영의 문제와 직결될 것이다. 때문에 이 현상은 단순히 해킹이나 디도스(DDoS)공격과 같은 기술적 문제에 국한돼 방화벽, 백신 프로그램과 같은 기술적 방어나 예방의 문제에 한정시켜 생각하면 큰 실수가 될 것이며, 이는 오늘날 펼쳐지고 있는 문제의 근원과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사이버 테러리즘의 문제는 엄밀히 말하면 사이버 공간과 관련된 테러리즘, 나아가서는 전쟁 또는 폭력행사와 불법적 또는 비합법적까지 포함된 경제활동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접근해 한다. 필자가 참여한 2011년과 2012년 유엔마약범죄국 프로젝트의 주제는 테러리스트의 인터넷 이용 즉 사이버 공간의 이용에 관한 문제였다. 이 사례는 오늘날 국제사회의 주요 행위자들이 사이버 테러의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사이버 공간은 땅, 바다, 하늘이라는 다른 공간들을 결합시키는 하나의 거대한 공용도로이자 연결통로가 되고 있다. 그리고 마치 우주의 웜홀과 같이 다른 현실 공간들이 갖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들을 극복하고 시간과 공간의 서로 다름을 하나의 접점으로 통합한다. 때문에 누군가 사이버 공간을 장악한다면 엄청난 전략적 유연성을 갖게 된다. 미래에 사이버 공간을 장악한 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시간과 공간, 그리고 물리력을 통합해 사이버 공간을 통해 적을 공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공간장악 능력은 전쟁의 승리와 경제적 번영을 가져다 줄 것이다. 사이버 공간을 장악한 자가 세계질서의 패권을 장악할 지도 모른다.
사이버 공간의 장악은 또 현실공간에서 군사력을 동원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리력은 전투부대나 테러공격 같은 실제 파괴력과 이의 성공적 수행을 지원하는 정보, 수송, 병력지원, 물자지원, 무기지원, 프로파간다 등의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사이버 공간을 이용하면 이 지원부분의 비용을 크게 낮추고, 물리적 파괴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를 힘의 증강요소라고 부른다. 즉 같은 힘을 가지고 더 큰 파괴력을 만들어낸다.
현재 수니파 과격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나 알 카에다와 같은 테러세력은 병력채용, 무기 공급, 정보제공, 선전 선동, 심리전, 자금지원 등과 같은 지원 부분에 사이버 공간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인터넷을 통한 폭탄제조법의 배포,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지원자 모집과 극단화 등은 그 사례들이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가상폭력과 하늘, 바다, 땅과 같은 현실 공간에서의 실제폭력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때문에 네 가지 형태의 역동성이 나타날 수 있다. 그것들은 (1)가상공간에서 지원이 가상공간에서 물리적 폭력으로 나타나는 경우 (2)가상공간에서 지원이 현실에서 물리적 폭력으로 나타나는 경우 (3)현실에서 지원이 가상공간에서 물리적 폭력으로 나타나는 경우 (4)현실공간에서 지원이 현실공간에서의 폭력으로 나타나는 경우이다. 이 가운데 (4)의 경우는 사이버 공간이 관련되지 않으므로 사이버 공간과 테러문제는 앞의 세 경우에 해당된다. (1)의 경우는 적의 네트워크 서버를 공격하는 디도스 공격이나 해킹, 스파이웨어를 통한 정보탈취, 바이러스 유포 등으로 나타난다.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사이버 테러이다. (2)의 경우는 사이버 공간을 통해 제공된 정보를 통해 사제폭탄을 제작하여 현실에서 테러공격이 발생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앞으로 사물인터넷, 무인 자동차, 드론, 그리고 로봇병기 등을 통해 보다 세련된 형태로 구현될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연결된 로봇병기나 드론 등이 현실폭력을 실행하는 주요 주체가 될 것이다. 로봇병기란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컴퓨터에 기동능력과 살상무기를 장착한 것이다. (3)의 경우는 전자기펄스(EMP) 폭탄이나 고주파 전자총 등으로 구현된다.
가상폭력과 현실폭력이 서로 통합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이버 공간의 장악 능력이 미래 세계질서의 패권 장악에 결정적일 것이라는 점이 보다 분명해 진다. 흥미로운 점은 공군전력의 발전과정과 유사한 궤적을 그린다는 점이다. 아직은 사이버 전력의 핵심이 출처가 공개된 정보(OSINT), 빅 데이터 분석과 데이터 마이닝, 해킹, SNS를 활용한 사이버 심리전, 기존정보 짜맞추기(Scrapping), 크롤링(많은 컴퓨터에 분산 저장되어 있는 문서를 수집하여 검색 대상의 색인으로 포함시키는 기술), 그리고 데이터 가로채기(인터셉팅)과 같은 정보활동 또는 정보전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앞으로 사이버 공간을 통한 현실 공간 공격능력, 그리고 이 공격능력을 보호하기 위한 사이버 공간 장악을 위한 사이버 공간전투능력, 그리고 이 사이버 공간 타깃에 대한 현실공간에서의 공격능력 등으로 다원화되고 이들 전력이 통합 사이버 전력을 구축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통합 사이버 전력은 다시 우주 공간을 포함하게 될 현실공간에서의 전투전력과 통합될 것이다.
결국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미래의 패권 장악을 위해서는 사이버 공간을 장악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OSINT, 빅 데이터 처리, 전투로봇과 무인 비행기, EMP, 해킹 및 방화벽, 인공지능, 무인 차량, 바이오 나노, 동작인식 CCTV 등의 관련 기술 및 운용역량이 함께 발전되고 구축돼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영역들을 통합하고 기획하고, 운용할 수 있는 장기전략과 단기전술 능력이 배양되어야 할 것이다. 잘못된 가정에 기초한 방어위주 전략은 새로운 공간장악능력과 함께 통합된 전쟁수행능력과 전략적 혁신을 이길 수 없다. 프랑스의 마지노 라인이 독일 국방군의 항공전력과 기계화된 지상전력을 통합한 전략적 혁신에 얼마나 무기력하게 무너졌는지를 되새겨볼 일이다.
윤민우ㆍ가천대 경찰안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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