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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형산의 박옥 프로젝트

입력
2015.10.1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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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산(荊山)에 박옥(璞玉)을 어더(형산에서 옥돌을 구해)

세상 사람 뵈라 가니(세상 사람들에게 보이러 갔더니)

것치 돌이여니 속 알리 뉘 이시리(겉이 돌로만 보이니 속 알 사람 뉘 있겠느냐)

두어라 알닌들 업스랴 돌인드시 잇거라(Let it be! 누군가 알 것이니 돌처럼 있자꾸나)

(조선 숙종 때 가인(歌人) 남곡(南谷) 주의식(朱義植)의 시조)

1930년대 홍난파의 ‘관현악곡 모음곡’, 김세형의 교향시 ‘오텔로’, 김동진의 ‘바이올린협주곡 제1번’, 임동혁의 ‘디베르티멘토’ 등 우리 작곡가들은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꾸준히 오케스트라 음악들을 작곡했다. 일제 압제로 위축된 민족 정서를 오케스트라로 증폭시키기 위해 김성태는 ‘카프리치오소’를, 김동진은 ‘제례악’, ‘양산가’를 남겼으며 해방의 감격을 채동선은 오케스트라를 위한 ‘조선’(1946)으로, 윤용하는 ‘영광’으로 남겼다. 나운영은 1958년 첫 ‘교향곡’ 발표 이후 모두 13편의 교향곡을 남겼다.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발표된 우리 작곡가들의 오케스트라 창작곡들 일부이다. 애창 가곡들로 우리에게 친숙한 작곡가들이지만 가곡 외 어떠한 기악곡이나 오케스트라 작품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다. 교과서는 물론 음악회 혹은 기록으로도 배우거나 듣거나 본 바 없으니 세상 사람들은 우리 작곡가들을 오케스트라 곡도 못 쓰는 돌로 생각한다.

뜬금없지만 오케스트라 음악은 국력의 바로미터이다. ‘핀란디아’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연주 규모와 극적 효과, 청중 동원 등으로 볼 때 오케스트라 곡은 듣는 이들을 하나로 만드는데, 자존심 고취에 효과적이었다. 19세기 중반 이후 러시아를 비롯한 동ㆍ북부 유럽에서 번져나간 민족주의 음악들 대부분은 오케스트라 중심이었으며, 20세기 뛰어난 오케스트라 음악 작곡가들로 국력에 비해 강한 음악 영향력을 지닌 헝가리, 폴란드, 북구의 경우도 그러하다. 이는 좋은 오케스트라 때문이 아니라 뛰어난 창작 오케스트라 작품들 때문이다.

모창 가수가 아닌 진정한 가수가 되려면 자신만의 오리지널이 있어야 하듯 한 사회가 성공적으로 음악문화를 구가하려면 다양한 오리지널 창작곡들이 풍성해야 한다. 불행히도 우리의 경우 그러하지를 못했다. 한국 오케스트라 작품들은 역사적으로 주목은커녕 관심도 받지 못했다. 여러 작곡가들이 시대마다 열정 어린 사명감, 그리고 기대감으로 작품들을 남겼지만 사회는 제대로 들어주거나 가치조차 평가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도 없었다. 식민통치와 분단, 전쟁과 대립, 사회적 혼란 속에서 모든 것이 서구와 달라서 창작 음악에 대한 정상적인 유통구조는 전무했다. 이 와중에도 언제 연주될지 모를 곡들을 남긴 작곡가들. 지금은 고인이 되셨다.

“형산(荊山)의 박옥(璞玉)에서와 같은 절절한 심정으로 시작합니다. 사단법인 한국작곡가협회(이후 작협)는 작고하신 작곡가의 오케스트라 작품을 발굴, 재조명하는 작업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하였습니다. 올해 그 첫 작업으로 작고 작곡가의 대표 오케스트라 작품을 선정하여 내년 2월까지 유명 오케스트라의 연주회를 통해 발표할 예정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 선배 작곡가들의 작품 대부분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는 열악한 연주 환경 속에 초연, 혹은 몇 차례 재연된 후 기록으로만 남아있습니다. 젊은 세대는 물론 40, 50대 작곡가조차 들어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이는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책임감을 느낀 작협이 앞장서 선인들의 소중한 예술 업적을 우리 사회에 다시금 제시하려 합니다. 이는 우리 창작음악사의 실질적인 복원 작업이면서 아울러 현 작곡가들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후략)”

오케스트라 음악 안에는 마치 유전인자처럼 그 나라, 사회가 지닌 창작 음악에 대한 관심과 수준에 관한 정보가 숨겨져 있다. 지속적인 사회의 관심 속에 오케스트라 창작음악들로 우리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황성호 작곡가ㆍ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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