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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일까 흑인일까… 이중 의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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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일까 흑인일까… 이중 의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입력
2015.10.18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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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역사학자이며 흑인 저항운동의 중요한 사상적 지도자이자 민권 운동가인 듀보이스(William Edward Burghardt Du Bois, 1868~1963)는 남북전쟁이 끝난 몇 년 뒤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작지만 풍요로운 마을인 그레이트 배링턴에서 태어났다. 그는 최초로 박사학위를 딴 아프리카계 미국인, 그러니까 일부러 정치적으로 삐뚤어져서 말한다면, 미국 최초의 박사 깜둥이다.

그는 1909년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 창설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이 단체 기관지의 편집을 오래 동안 맡았다. 그의 ‘필라델피아 흑인’(1899)은 미국 흑인 빈민 사회에 대한 최초의 사회학적 사례 연구이며, 다른 저서로는 ‘흑인 민중의 영혼’(1903) ‘흑인의 재건’(1935) 등이 있다. 그는 기본적으로 범아프리카주의 입장이지만 사회주의 이념에도 친화적이었는데 1951년 매카시즘의 영향 아래에서 간첩 혐의로 기소되었고 연방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런 사건에다가 NAACP의 헤게모니가 상류층 흑인들에게 넘어가면서 미국 사회에 완전히 환멸을 느낀 그는 1960년대 초 아프리카의 가나로 떠나서 장기 외유를 하던 중 미국 정부가 여권 갱신을 거부하자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가나에서 살다가 죽었다. 미국 우정공사는 1992년과 1998년에 그의 초상이 들어간 기념 우표를 찍어냈다.

순종주의 흑인지도자 워싱턴과 대립

듀보이스의 어머니 메리 실비나 벅하트는 그레이트 배링턴의 작은 해방 흑인 커뮤니티 출신이다. 그녀의 조상은 네덜란드, 영국, 아프리카계로 이루어졌다. 듀보이스의 모계 고조할아버지는 북아프리카에서 태어난 노예였는데 미국 독립전쟁을 거쳐서 해방되었다. 듀보이스의 부계 증조부는 프랑스계 뉴욕 거주 미국인이었고 여성 노예들과의 사이에 여러 아이들을 두었다. 그 혼혈 아이들 중의 하나가 아이티로 건너가서 다시 아들(듀보이스의 아버지)을 낳았는데, 바로 그 듀보이스의 아버지가 미국으로 이민 와서 매사추세츠에 살게 된 것이다. 듀보이스의 아버지는 듀보이스가 태어난 뒤 2년만에 아내와 아이를 버리고 떠나갔다. 듀보이스의 탄생을 둘러싼 개인사 자체에 중남미와 미국의 제국주의 및 식민지 역사가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어린 듀보이스는 공부를 잘해서 선생들로부터 인정을 받았고 장학금을 얻어서 흑인들만을 위한 전통 고등교육기관(비공인 대학)에 진학을 했다. 그곳을 마친 뒤에야 듀보이스는 하버드대학에 입학을 해서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로부터 큰 영향을 받게 된다. 3년간의 하버드 학부를 우등으로 마친 듀보이스는 장학금을 받아서 베를린대학에 유학을 갔다가 다시 하버드로 돌아와서 1895년에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1897년에 조지아주의 애틀랜타에 있는 흑인들만을 위한 전통적인 고등교육기관에서 교수 자리를 얻게 된다.

듀보이스는 애초에는 흑인 중에서도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인종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린치, 빚을 갚기 위한 노예노동, 공민권 박탈, 짐 크로 인종차별법 체제, 인종 폭동 진압 과정에서의 백인들의 만행 등을 겪으면서 급진적으로 변했다. 듀보이스는 당시에 가장 영향력 있던 흑인 지도자 부커 워싱턴과 대립하게 되었다. 워싱턴은 타협과 화해의 철학을 설교하면서 약간의 양보를 얻어내는 대신에 당분간 차별을 받아들이자고 했다. 듀보이스는 워싱턴의 견해가 기본적으로 흑인이 열등하다는 생각을 전제하는 것이며 순종주의라는 점에서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듀보이스의 비판은 NAACP의 결성을 계기로 즉각적인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는, 좀 더 급진적이고 저항적인 흑인 민권운동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이중적 분열감

듀보이스가 중요한 이유는 오늘날에도 흑인 청년들이 대낮 길거리에서 백인 경찰관에게 마구 총 맞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지적한 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갖고 있는 ‘이중 의식’ 때문에 사상적으로 중요하다. “그것은 어떤 특이한 지각 작용, 이러한 이중 의식, 즉 늘 타자들의 눈을 통해 자기를 바라보고, 달콤한 경멸 및 동정의 외양을 띤 세계의 줄자로 자기 영혼을 재는 이러한 감각이다. 흑인은 언제나 이중적 분열감(two-ness)을 느낀다-미국인인 동시에 깜둥이라는; 두 영혼, 두 사고는 화해하지 못한 채 갈등하며, 검은 몸 안에서 두 이념들은 전쟁 중이며 단지 그 몸의 끈덕진 힘만이 몸이 서로 갈가리 찢기는 것을 막아준다.”(‘흑인 민중의 영혼’)

듀보이스의 이중 의식 개념은 프란츠 파농의 그 유명한 ‘검은 피부 흰 가면’ 테제와도 연관되며, 특히 오늘날 미국의 유색인 페미니스트들이 제기하고 있는 ‘교차성(intersectionality)’ 개념에 직결된다. 교차성 개념은 인종, 계급, 젠더, 섹슈얼리티, 국적, 종교, 세대 등과 같은 다양한 정체성 범주들이 서로 복잡하게 교차하면서 모순적으로 얽혀 있는 현실을 해석하고 변혁하기 위해 제기되었다. 교차성 개념은 사회학자 콜린스(1948~), 법학자 크렌쇼(1959~), 문화이론가 안잘두아(1942~2004) 등이 모두 중시하고 있다. 셋 다 미국 여성인데, 콜린스와 크렌쇼는 아프리카계고 안잘두아는 멕시코계다.

스스로가 튀기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임을 밝힌 안잘두아의 경우, 교차적이고 모순적인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깨어나는 과정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라 파쿨타드’와 ‘코아틀리퀘 상태’와 ‘메스티자 의식’ 등과 같은 토착적 개념들을 제시한다.

스페인어 ‘라 파쿨타드(la facultad)’는 어원적으로 영어 ‘faculty’에 상응하는 단어인데, 그 뜻은 능력, 힘, 권리, 권능 등이고, 그 문법적 성은 여성이다. ‘뱀들의 치마’라는 어원적 의미를 갖는 ‘코아틀리퀘(Coatlicue)’는 멕시코 아즈텍 신화에서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대지의 여신이자 신들의 신으로, 여러 자식을 낳지만 결국 그녀는 아들(태양의 신) 편에 선 딸에 의해 살해된다. ‘메스티자(mestiza)’는 원주민 여성과 백인 남성 사이에 태어난 여성을 말한다. 스페인어에서 혼혈인 일반 및 혼혈인 남성은 메스티조(mestizo)라고 불리는데, 이것은 영어 man이 인류 일반과 동시에 남성을 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경계 넘어 새 영토 선택하는 능동성 중요”

안잘두아의 이러한 개념들은 마르크스의 물신주의 개념과 연관되고, 또 1970년대 중후반 한국에도 널리 소개되었던 파울로 프레이리의 ‘의식화’ 개념과도 비교될 수 있다. 쉽게 단정짓는 것은 위험한 일이 되겠지만, 마르크스와 프레이리의 개념들이 상대적으로 다소간에 단일하고 균질적이고 선조적이고 계몽적이며 개입적이라면, 안잘두아의 개념들은 모순적이고 혼성적이고 중층적이고 생성적이며 치료적이라고 할 수 있다.

메스티자는 “한 문화의 요람에서 자라서 두 문화 사이에 끼이고 세 문화와 가치 체계에 두 다리를 걸친 채 (…)온몸의 투쟁, 경계들 간의 다툼, 내적인 전쟁을 겪”는다. 또 이 체험으로부터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설정된 두 문화의 “참조틀을 합쳐 보았댔자 문화적 충돌”만이 일어난다는 것도 잘 깨닫고 있다(‘경계 지대’).

안잘두아는 듀보이스가 지적한 ‘이중 의식’ 상태에 갇혀 있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서 나아갈 수 있는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계기를 끄집어낸다. “우리는 양편 해안에 동시에 있으면서 또 뱀과 독수리의 눈으로 동시에 보게 된다. 또는 지배문화로부터 탈피하여 대의를 상실한 것으로서의 지배문화를 모두 지워버리고 경계를 넘어서 전적으로 새롭고 분리된 영토로 들어가기로 결정할 수도 있다. 또는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수동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행동하기로 결정하기만 하면 가능성은 무수히 많다.”(‘경계 지대’)

현실의 불평등하고 부당한 갖가지 상황이나 사건들을 추상적으로 ‘갑질’이라고 고발하면서 그저 건너편의 다른 해안에만 머물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듀보이스에서 안잘두아까지를 꼼꼼히 음미해 두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만 세상을 뱀의 눈과 동시에 독수리의 눈으로 보는 안목이 길러질 것이며, 또 그런 안목으로 세상을 살면서 실천하다 보면 언젠가 마침내 세상이 바뀔 것이다. 당연히 비약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알바하면서 ‘삼성고시’나 공무원 시험 등을 준비하고 있는 내가 바로, 법외 이주민 상태의 캄보디아 비정규직 노동자 그/녀라는 안목 말이다.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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