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9년 10월 16일, 미국 뉴욕의 카디프에서 키 3m에 이르는 ‘화석 유해’가 발굴됐다. 윌리엄 뉴웰이라는 농부가 인부를 사서 우물을 파던 중이었다. ‘카디프 거인Cardiff Giantㆍ사진)’이라 불린 유해를 두고 일부 신학자와 목사들은 구약성경의 진실이 마침내 빛을 보았다며 들떠 설교했다. 창세기 6장의 ‘네피림(Nephilim)’ 즉 하나님의 아들들과 인간의 딸들 사이에 태어난 거인족의 유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신자와 구경꾼들이 몰려 장사진을 이루자 뉴웰은 천막을 치고 1인당 25센트의 관람료를 받았다. 입장료는 이틀 뒤 50센트로 인상됐다고 한다.
물론 가짜였다. 1년 전 뉴욕의 담배 제조업자 조지 헐(George Hull)이란 이가 석공을 동원해 석고 석상을 깎게 한 뒤 산성용액 등으로 표면을 부식시켜 흠집을 내고 때를 묻혀 조카인 뉴웰의 농장에 파묻은 거였다. 거인을 본 뒤 지병이 나았다는 식의 영험한(?) 간증까지 이어지면서 더 뜨거워진 관람 열기에 가짜라는 고고학자들의 판정은 여지없이 묵살됐다.제작ㆍ운송 경비로 모두 2,600달러가 들었다는 ‘카디프의 거인’은 얼마 뒤 한 합자회사에 2만3,000 달러에 팔렸다.
유해의 환금성에 눈을 뜬 이 중에는 ‘링글링 브라더스’ 서커스의 창설자 P.T 바넘도 있었다. 그는 ‘거인’을 사겠다며 5만 달러를 제안했지만 회사가 거절하자 아예 ‘거인’을 복제해버린다. 그리고 자신의 것이 진짜라고 선전하며 별도 전시를 시작했다. 소송이 시작됐고, 진위 공방이 불붙었다. 법원은 특별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진위를 판별했고, 1870년 2월 2일 둘 다 가짜라고 결론 짓는다. 가짜의 가짜에 대한 소송 역시 당연히 원인 무효가 됐다. 그렇게 끝나나 싶던 짧은 허무극은 하지만, 1876년과 77년, 92년, 97년 다른 장소 다른 이들에 의해 유사한 형태의 사기극으로 재현됐다.
헐에 대한 소송은 알려진 바 없다. 무신론자였던 그가 창세기 거인족의 실재 여부를 두고 한 감리교도와 논쟁을 벌인 뒤 맹신자를 조롱하기 위해 벌인 일이라는 설이 있지만, 단지 돈을 벌기 위해 벌인 일이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의 사기극은 결과적으로 종교적 허상과 맹목에 대한 통렬한 풍자극으로 남았고, 문학과 음악 등 다양한 예술 작품의 모티프가 됐다. 그의 ‘거인’은 이후로도 몇 번 더 장식용 등으로 거래가 됐고, 1947년 뉴욕 쿠퍼스타운 ‘파머스 뮤지엄’이 사들여 지금도 전시 중이라고 한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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