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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차나 한잔

입력
2015.10.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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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장 한쪽에 놓여있던 찻잎을 꺼냈다. 1년 전 선물 받은 것이다. 잊고 있었는데 입안이 텁텁하던 참에 떠올랐다. 찻잎뿐 아니라 여러 열매도 섞인 이른바 블렌딩 티. 거름망이 없어 컵에 잎을 담고 그냥 뜨거운 물을 부었다. 향이 은은하다. 달콤한 맛도 닿으나 강하진 않다. 혀끝에 걸리는 이파리들을 일일이 걸러내는 것도 번거롭지만은 않다. 급히 마시지 말라고 물바가지에 나무 이파리를 띄웠다는 옛 얘기도 떠오른다. 한 모금에 한 닢씩 혀끝에서 떼어내 티슈에 붙여본다. 하얀 종이에 이런저런 형상을 꾸며 놀아볼 수도 있겠다 싶다. 마음이 가라앉는다. 플라세보 효과일지도 모르지만, 온갖 자극적인 입맛에 돌출돼버린 몸과 마음의 어느 부위가 움푹하게 파이는 느낌이다. 시간을 감지하는 속도도 달라진다. 줄곧 달려가기만 하던 엔진에 열기가 빠지면서 목적 없이 헛돌던 기운들이 따스한 김과 함께 느긋하게 식는 것 같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티슈에 붙인 찻잎들을 만지작거려본다. 식물의 조각들을 떼어내 사람의 몸을 달래는 이 오묘한 원리를 누가 처음 발견했을까. 사실을 확인하는 것보다 혼자 상상해보는 게 더 좋을 듯싶다. 식물의 정기를 몸으로 받는 일이라 여기니 자못 경건한 기분도 든다. 과장이려나. 그래도 이 짧은 시간의 훈훈한 화학작용을 건조한 사실의 나열로만 설명하고 싶진 않다. 저녁이 추워진다. 차나 한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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