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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다리 밑 자갈밭에 벌인 좌판, 해양수산도시 부산의 얼굴로

입력
2015.10.15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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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일본인 거류지 생긴 후 소규모 수산물 시장 첫 형성

광복 후 귀환 동포들이 좌판 열고 한국전쟁 팔도 피란민들 가세

1985년 대화재 후 백화점 형태로

거래 수산물만 250종 달해

국제시장과 더불어 관광 필수코스

축제의 계절 10월엔 인산인해

삶의 흔적이 곳곳에서 묻어나는 자갈치 시장은 부산의 얼굴이다. 부산시민들과 방문객들이 자갈치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부산 중구청 제공
삶의 흔적이 곳곳에서 묻어나는 자갈치 시장은 부산의 얼굴이다. 부산시민들과 방문객들이 자갈치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부산 중구청 제공

부산 중구 자갈치시장을 제대로 즐기려면 10월이 제격이다.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막바지인 지난 8일 저녁 기자가 찾은 자갈치는 외지 손님이 많아서인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1층 상가에서는 싱싱한 회를 싸게 먹기 위한 손님과 아지매들 사이에 흥정이 한창이었다. 여러 활어들이 있지만 찬바람이 부는 요즘 전어가 인기를 독차지 한다.

한 상인은 “자갈치에서는 수심 깊은 남해에서 잡은 전어만 취급하기 때문에 잡내가 없어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자랑했다. 30년 넘게 시장을 지켜온 강석준(63)씨는 “매년 10월이면 날씨가 선선해 지고 축제가 잇따르면서 손님이 부쩍 많아져 일할 맛이 난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온 이태완(44)씨는 “평소 회를 좋아하는 아들, 딸과 함께 왔는데 싱싱하고 값이 싸 벌써 두 접시째 먹고 있다”며 “서울에서 먹던 회와는 확연히 맛이 다르다”고 엄지를 치켜 세웠다.

2층 초장집과 횟집 여기저기에는 초저녁부터 자리잡은 이들로 시끌벅적했다. 자갈치 아지매들의 손길에도 힘이 있어 보였다. 좌판이 늘어선 좁은 통로를 따라 많은 이들이 오가면서 어깨를 부딪치기 일쑤지만 누구도 불쾌해 하지 않았다.

자갈치시장은 지나온 세월만큼 먹거리가 많다. 특히 사시사철 끊이지 않는 먹거리로는 곰장어(먹장어) 구이가 유명하다. 부산지하철 1호선 자갈치역에서 갯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따라 공영주차장 뒤편으로 걸어가면 여기저기 원조를 앞세우는 곰장어 구이집이 즐비하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연탄불에 구워지는 고소한 곰장어 냄새가 시장 일대를 진동한다. 곰장어는 껍질을 훌렁 벗겨도 살아있을 만큼 징글징글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자갈치 역시 곰장어 못지 않은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시장이다.

부산을 찾은 외지인이 자갈치를 건너뛰고 갔다면 부산에서 ‘헛것’만 보고갔다는 말이 괜히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광복과 전쟁, 격동의 도가니는 부산에 자갈치라는 부산물을 남겼다. 투박한 경상도 말씨만큼이나 억세디 억센 삶의 흔적들이 시장 여기저기서 묻어난다. 자갈치는 해양ㆍ수산도시 부산의 얼굴이다.

본래 ‘자갈치’는 부산 중구 남포동 영도다리 밑의 길게 늘어진 갯가 주변을 이르던 말이었다. 지명은 부산어패류처리장에서 취급하는 활어 중 자갈치란 어종이 많아 유래되었다는 설과 이곳 해안이 자갈밭을 이루고 있었다는 데서 비롯됐다는 설로 나뉘지만, 후자에 힘이 더 실린다.

옛 사진을 보면 이곳 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장면이 나온다. 자갈치시장 일대가 예전엔 파도에 닳고 닳은 예쁜 자갈들이 넓게 깔린 청정해역이었다는 사실을 사진으로 밖에 확인할 수 없는 현실이 조금은 아쉽다.

개항(1876년) 이후 인접한 동광동과 광복동에 일본인 거류지가 형성됐고, 이때 어민들이 소형 선박을 이용해 일본인들에게 수산물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소규모의 시장이 형성됐다. 이후 일본이 남해안 수산물 유통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1910년 이곳에 부산어시장을 설립해 시장기능을 모두 흡수하려 했으나 자갈치시장의 활어 유통기능은 소형선박에 의해 지속적으로 이뤄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작은 배들만 묶여 있는 1910년대 부산 자갈치시장의 옛 모습. 부산 중구청 제공
작은 배들만 묶여 있는 1910년대 부산 자갈치시장의 옛 모습. 부산 중구청 제공

광복이 되자 일본에서 귀환한 동포들이 먹고 살기 위해 이 자갈밭에 몰려들어 좌판을 놓기 시작했다. 이어 한국전쟁으로 남하한 전국 팔도의 피란민들이 가세했다. 1970년 처음으로 건물이 들어섰으며, 1985년 대형화재가 발생한 이듬해 수산물종합백화점 형식의 건물로 새로 단장, 지금에 이르고 있다.

자갈치시장은 수산물에 관한 한 백과사전으로 불릴 만큼 다양성을 갖고 있다. 연근해는 물론 원양어선이 잡은 것을 포함하면 이 곳에서 거래되는 수산물은 250여종에 달한다.

자갈치시장은 역사성과 규모를 뛰어넘는 독특한 스토리텔링을 갖고 있다. 다름아닌 ‘자갈치 아지매’다. 허름한 좌판을 펴고 ‘몸뻬’로 불리는 통 큰 일 바지에 앞치마와 전대를 두르고 악쓰듯 손님을 부르는 이들이다. 굵은 손마디로 생선을 다듬는 자갈치 아지매의 억척스러움은 가난했던 시절 생활력 그 자체였으며, 지금의 자갈치를 있게 한 원동력이다.

김종진 ㈔부산어패류처리조합장은 “우리 자갈치시장 상인들은 1985년 대형화재, IMF 경제위기, 인근지역 대형 백화점 등장 등 크고 작은 위기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이겨내는 억척같은 생명력을 가지신 분들”이라고 자랑했다.

“보이소, 일로(여기로) 오이소, 새벽에 들어온 물건이 너무 좋심더…” 여기저기서 연신 손님을 불러대는 아지매들의 활기찬 목소리와 퍼덕이는 물고기로 시장은 언제나 활력이 넘친다.

지난해 말 영화 ‘국제시장’이 1,400만명의 관객을 동원, 대박을 터뜨리면서 부산을 찾은 관광객들 사이에선 국제시장과 더불어 인근 자갈치시장이 필수 관광코스로 떠올랐다. 특히 중구 남포동을 떠나 주 무대를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으로 옮긴 부산국제영화제도 지난달 30일부터 BIFF 광장에서 ‘스무 살, 성년이 되어 엄마 품으로 돌아온 부산국제영화제’라는 주제로 이곳에서 전야제를 열었다. 또 유명 배우들의 야외무대 인사 등 다양한 행사를 치러져 10월이 되면 국제시장과 자갈치시장은 관광객들로 북새통이다.

좌판을 중심으로 형성된 1940년대 자갈치시장의 모습. 자갈치시장에 처음으로 건물이 들어선 것은 1970년대 들어서다. 부산 중구청 제공
좌판을 중심으로 형성된 1940년대 자갈치시장의 모습. 자갈치시장에 처음으로 건물이 들어선 것은 1970년대 들어서다. 부산 중구청 제공

이런 분위기에 맞춰 부산 중구도 전국 최대 수산물 축제인 ‘부산자갈치축제’를 지난 8일부터 11일까지 개최, 눈길을 끌었다. 비슷한 시기 보수동 책방골목문화축제(9~11일),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전야 행사(10일), 광복로 차문화축제(11일) 등이 잇따라 펼쳐지면서 부산 중구 전체가 한동안 축제 공간으로 변신했다. 다음달 28일부터는 광복로 일대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트리축제가 바통을 넘겨받아 연말까지 축제 분위기를 이어 나갈 예정이다.

김은숙 중구청장은 “그 동안 분산 개최돼 시너지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던 가을축제를 올해부터 자갈치축제와 비슷한 시기에 잇따라 개최함으로써 관광객 편의와 지역상권 활성화, 축제 경쟁력 강화 등을 꾀하고 있다”면서 “부산의 상징인 자갈치시장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상인들과 함께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산=전혜원기자 iamjh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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