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근현대사 편향성 5대 쟁점 되짚어보니…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근현대사 편향성 5대 쟁점 되짚어보니…

입력
2015.10.14 16:43
0 0

역사는 사실에 대한 해석의 학문이다. 지나온 사실에 대한 해석은 역사학자마다 다양하다. 그 해석을 놓고 ‘편향성’ 시비가 제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논란과 우려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검인정체제 하에도 그래왔듯 국가가 편찬하는 ‘올바른 역사교과서’도 편향성 논란을 벗어나기 힘든 까닭이다.

역사 교과서 편향성 논란의 핵심은 근ㆍ현대사 100여년을 어떻게 보는가에 있다. 식민지배와 독립운동, 광복, 정부수립, 한국전쟁, 독재, 군사정변, 경제성장, 민주화, 남북대립이 겹쳐져 있는 그 한 세기는 사실 우리 사회 진보와 보수가 부딪히는 이념의 지대이다. 서 있는 위치가 상이한 지금 극우에서 보면 중도는 언제나 좌편향이고, 반대로 극좌에서 본 중도도 우편향이다. 역사 해석에 대한 합의가 없다면 이념싸움, 편향성 논란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논란을 피하려면 “차라리 근ㆍ현대사는 연대기만 적어야 할 것”이란 지적마저 나온다.

검인정이든 국정이든 논란의 핵심이 될 현대사의 역사적 사실을 5가지 꼽았다. 역사학자 10여명의 의견과 교육부가 2013년 검정교과서에 ‘수정명령’을 내린 내용을 중심으로 선정했다.

임시정부 법통· 대한민국 건국일

‘1919년 4월11일(진보) vs 1948년 8월15일(보수)’

대한민국 건국일은 좌우간 해석이 첨예하게 갈리는 주제 중 하나다. 진보성향의 역사학자들은 헌법 전문에서‘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명시한 만큼 임시정부가 세워진 1919년 4월11일이 건국일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식민지근대화론에 입각해 서술된 교학사 역사교과서의 집필자인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교수,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등 뉴라이트 진영은 유엔이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정부로 승인, 정부를 세운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일로 삼아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국가의 3요소인 국민, 영토, 주권이 비로소 갖추어진 것이 1948년 8월15일인 만큼 이날을 대한민국‘정부수립일’로 의미를 축소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같은 단독정부이지만 북한에 세워진 정부를‘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으로 인정하는 것과 모순된다는 것이다.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 전문은 ‘정신적 계승’을 의미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김정배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역시 “(임시정부는 말 그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역사학자들은 보수세력이 친일행적을 감추기 헌법을 곡해하고 있다고 맞받아친다. 현재의 헌법은 물론이고 1948년 공포된 제헌헌법에도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고 언급된 만큼, 임시정부수립은 곧 건국을 뜻한다는 것이다. 한시준 단국대 역사학과 교수는 “보수는 건국을 1919년으로 삼을 경우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부각시킬 수 밖에 없고 그럴수록 자신들의 친일행적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논란의 와중에 정부는 지난 달 확정한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1948년 8월15일에 대한 표기를 기존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서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꾸도록 했다. 이 때문에 현 정부가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외면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

광복이후 정부 수립 과정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정에 대한 서술 역시 “남한을 부정적으로만 인식하게 한다”(보수)는 주장과 “종북몰이로 집필자 재량권을 침해한다”(진보)는 주장이 맞선다.

2013년 교육부가 수정명령을 내린 검정교과서‘남북 분단과정 서술’과 관련된 부분이 좋은 예다. 정부는 광복 이후 대한민국 수립과정에서 북한의 정권수립 움직임이 먼저 있었음에도 남한 부분을 먼저 서술해 마치 분단의 책임이 남한에 있는 것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다며 순서를 바꿀 것을 지적했다.

실제 금성교과서 등은 정부수립 과정을 미ㆍ소공동위원회 개최(1946년 3월), 남한 단독정부 수립의 불가피성을 강조한 이승만 정읍발언(1946년 6월), 남북협상 추진, 유엔 감시 하에 치러진 5ㆍ10총선거(1948년 5월) 등의 내용 다음에 북한 관련 내용(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출범ㆍ1946년 2월)을 배치했다. 이에대해 왕현종 연세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이승만의 발언 역시 남북분단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은 역사학계 통설”이라며 “남한의 교과서이므로 우리 부분을 먼저 서술해온 관례를 따랐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교육부가 최근 새누리당 역사교과서개선특별위원회에 제출했다고 알려진 ‘고교한국사교과서분석’자료를 놓고도 해석이 갈린다. 정부는 검인정 교과서에 실린 해방 직후 남북한에 진주한 미군과 소련군의 포고령 자료가 상반돼 오해를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한다. 맥아더 포고령이 “조선인민에 대한 통치 권한은 당분간 본인(맥아더)의 권한 하에 시행한다”며 미군을 점령군으로 묘사한 것처럼 보이는 반면, 치스차코프 포고령은 “붉은 군대는 조선인민이 자유롭게 창조적 노력에 착수할 만한 모든 조건을 지어주었다”고 돼있어 소련을 해방군처럼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치스차코프 포고령은 북한의 역사서인 ‘조선통사’와 ‘현대조선역사’를 발췌해 북한을 미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도면회 대전대 역사학과 교수는 “해당 내용 및 북한의 두 역사서는 남한 책에도 많이 실린 공식문서”라고 반박했다.

독재, 北관련 표현·분량까지 대립… 접점없는 극과 극 평가

14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민주광장에서 열린 고려대 총학생회 주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철회 기자회견에 참가한 학생들이 종이 피켓을 들고 있는 가운데 한 여학생이 유인물을 읽어 보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14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민주광장에서 열린 고려대 총학생회 주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철회 기자회견에 참가한 학생들이 종이 피켓을 들고 있는 가운데 한 여학생이 유인물을 읽어 보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한국전쟁 책임론

한국전쟁 책임론도 빠지지 않는 쟁점이다. 현행 검정 체제에서 한국전쟁의 남북 공동책임론을 명시한 교과서는 없다. 다만 탐구 주제 등에 수록된 자료가 한국전쟁 공동책임론을 시사한 것이 논란이 됐다. 사실 한국전쟁 책임에 대해선 구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와 중국, 동유럽에서 남침을 뒷받침하는 비밀자료가 공개된 이후 일단락됐다. 지금 논란인 것은 한국전쟁과 전쟁에서 빚어진 참상에 대한 해석 문제다.

보수 진영은 북한의 남침을 분명하게 알릴 자료만 실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학생들은 사료를 오해할 소지가 있다”고 했다. 때문에 “공동책임론을 우회적으로 시사할 수 있는 자료도 교과서에 실어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보수 진영은 현행 8종 고교 국사교과서 가운데 한 교과서의 검토본에 사료로 수록된 고 김성칠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의 일기(‘역사 앞에서’)가 전쟁 공동책임론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동기로 본다면 인민 공화국이나 대한민국이나…’, ‘피차 남침과 북벌을 위하여…’등이 문제가 된 문맥이다.

진보 진영은 북한이 한국을 침략한 건 맞지만 이에 대한 서술이 1970년대의 ‘반공주의’식으로 흐르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교과서 본문에서는 통설에 입각한 역사를 배우더라도 관련 자료나 사료를 다양하게 접해야만 한국전쟁 상황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창의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준식 역사정의실천연대 정책위원장은 “김 교수의 수필은 공동책임론을 주장한 사료가 아니라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까지 개인 소회를 담은 일기”라며 “학계에서 역사적ㆍ교육적 가치가 인정돼 7차 교육과정 고등국어 교과서에도 실린 것으로 학생들이 읽고 토론하기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전쟁 과정에서 벌어진 참상의 기술도 대립되는 부분이다. 보수 진영은 현행 교과서들이 민간인 학살의 예로 국군의 ‘거창 양민 학살’을 수록한 것을 비판하며, 북한군의 학살 사례가 반영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진보 진영은 거창 사건은 국가가 피해자에게 배상까지 한 것이며, 전쟁 참상을 소개하는 사례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승만ㆍ박정희 평가

남북한의 초대 통치자인 이승만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 남한의 근대화를 이끈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극과극으로 갈린다. 체제 대립적인 시각으로 현대사를 바라보는 정부와 뉴라이트 성향 역사학자들은 남한의 성공을 이끈 지도자라는 관점에서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과보다 공을 부각시키려 하고 김일성과 관련된 서술은 대폭 줄이거나 비판적 서술만 써야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진보성향의 학자들은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현행 검정 교과서의 기술은 공과를 균형있게 다루고 있으며, 현실적 실체인 북한을 50년 간 통치해왔다는 점에서 김일성에 대한 객관적 서술도 불가피하다는 견해다.

오랫동안 정치적 독재라는 과오가 부각됐던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 정부와 보수세력은 끊임없이 ‘건국의 아버지’로 재평가하려 한다. 이에 대해 진보성향의 배경식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은 “자본주의 세력이 우리나라 산업화에 기여한 측면을 부각시키려는 시도”라고 분석한다. 뉴라이트 성향의 학자들이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인 서술을 강조하는 것도 이승만 대통령의 재평가의 연장선상이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지난 13일 국회에서 “국정 교과서에서 유신 독재를 미화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5ㆍ16 군사정변을 규정하라는 질문에 “답하면 논란이 생겼다”고 말을 아꼈다. 이에대해 한철호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높여 독재를 은폐하고 이 연장선상에서 박정희 정권의 독재를 은폐하고 유신을 미화하려는 의도”라고 강조했다. 반면 강규형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북한의 천리마운동에 대한 설명은 있고, 개발도상국들이 배우러 오는 새마을운동은 독재 때문에 저평가 돼 왔다”고 반박했다.

김일성에 대한 재평가는 일제시대 항일무장운동의 비중의 축소나 삭제, 독재의 부각 등 이승만, 박정희와 대비되는 서술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시각 차가 클 전망이다. 황우여 교육부장관이 “교과서에서 한국 광복군보다 김일성이 활동한 동북항일연군에 대한 서술을 더 자세히 다루고 있다”고 말한 점으로 미뤄 향후 김일성의 항일투쟁에 대한 서술 등이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에 대한 기술

체제경쟁은 이미 끝났지만 북한을 우리 교과서에 어떻게 기술할 것인가는 여전한 논쟁거리다. 주제와 내용은 물론이고 작은 문구하나까지도 논란이 된다. 통일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배워야 할 내용임에 틀림 없지만, 분단이라는 현실제약을 감안하면 북한 관련 서술은 이념 다툼으로 작용할 여지가 큰 셈이다.

교육부는 현행 검정교과서를 분석한‘고교 한국사 교과서 분석’에서 해방 후 북한의 토지개혁을 ‘무상몰수 무상분배’로 기술한 부분을 문제 삼았다. 이는 남한의‘유상몰수 유상분배’와 대조를 이루며 북한의 토지개혁이 남한의 개혁보다 농민들에게 더 혜택을 줬다는 인상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 때문에 교육부는 이미 2013년 금성, 두산동아, 비상, 천재교육 등에 “북한의 토지 개혁 당시 농민이 분배 받은 토지의 소유권에 제한(매매ㆍ소작ㆍ저당 금지)이 있었다는 서술이 필요하다”고 수정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주체사상’에 대한 소개는‘뜨거운 감자’다. 새누리당은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는 현수막까지 내걸며 ‘아예 배우면 안되는 것’으로 선전하고 있다. 2013년 교육부 수정명령에서도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소개한다”며 추가적으로 “주민 동원 위한 정치적 수사였음을 서술하라”고 했다.

이에 대해 교과서 저자들은“주체사상은 배우도록 돼 있고, 교과서에도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 등의 표현을 담는 등 북한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하지 않고 있다”고 반박한다.

교육부의 ‘2015 개정 역사 교육과정’에서 주체사상은 ‘북한의 변화와 남북 간의 평화 통일 노력’ 항목에 배워야 할 학습요소로 들어가 있지만, 교과서 국정화 발표 이후 교육 목적의 ‘주체사상’소개도 불가능하다는 쪽으로 기류가 바뀌면서 앞으로는 서술하기도 서술하지 않기도 까다로운 상황으로 바뀌었다. 한편 교육부의 2013년 수정명령에 따르면 북한은 남북관계 경색의 1차적 원인 제공자로 기술돼야 하고, 전쟁 중 민간인 학살과 같이 남한 측의 잘못을 지적할 때도 같은 내용으로 북한의 사례가 기재돼야 한다. 국정 교과서에도 이런 부분들이 강조될 것이 지배적인 전망이다.

이대혁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김현수기자 ddackue@hankookilbo.com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김민정기자 fact@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