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동부 포인트가드로 급성장
'허재 아들' 넘어 스스로 빛나기
프로농구 원주 동부의 2년차 가드 허웅(23)은 올 시즌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있다. “아버지의 이름에 먹칠하고 싶지 않다.” 지난 시즌까지 허재(전 전주 KCC 감독)의 아들로 더 유명했던 허웅의 이름 앞에 수식어가 사라지고 있다.
슈팅가드였다가 포인트가드로 변신한 허웅은 데뷔 두 시즌 만에‘동부산성’의 야전사령관 자리를 꿰찼다. 지난 시즌 루키로 가능성을 보인 허웅을 김영만 동부 감독은 일찌감치 점 찍었다. 동부가 전통적인 높이의 팀이지만 특출한 가드가 없어 전력을 극대화시키지 못해, 해법을 찾고 있던 중이었다. 중책을 맡은 허웅은 이제 동부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성장했다. 13일 현재 올 시즌 11경기에 나가 평균 14.73점에 3.6개의 어시스트, 55.7%의 야투 성공률을 기록 중이다. 9월24일 부산 KT전(6점)과 지난 9일 서울 삼성전(9점)을 제외하곤 모두 두 자릿수 득점을 올렸다. 득점은 전체로 따져도 귀화 혼혈 선수 문태종(오리온)을 제외하면 토종 선수 가운데 KT 이재도(16.36점)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지난 시즌과 비교하면 득점은 세 배 이상 늘었다.
무엇보다 허웅을 바라보는 농구인들이 허재 전 감독을 떠올리는 건 적중률 높은 3점슛 때문이다. 허웅은 경기당 평균 1.6개의 3점슛을 넣고 있는 가운데 성공률은 44.7%로 전체 1위다. 연세대 시절까지만 해도 허웅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평균 이상의 실력을 보유했지만 ‘농구대통령’으로 한국 농구에 한 획을 그은 아버지의 그늘이 워낙 컸던 탓이다. 허재의 아들이 아닌 허웅으로 인정받겠다고 이를 악문 그는 마침내 기량을 꽃피우기 시작했다. 물론 아버지에게 물려 받은 DNA는 무시할 수 없다.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속공과 정확한 외곽슛 능력은 아버지를 쏙 빼 닮았다.
허재 전 감독은 지난 시즌 도중 KCC 지휘봉을 반납한 뒤 야인으로 지내고 있지만 아들의 경기는 빼 놓지 않고 볼 정도로 여느 아버지와 똑 같은 자식 사랑을 드러내고 있다. ‘대통령’으로 장기 집권했던 농구계 대권을 아들에게 넘겨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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