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 엘리엇이 결정적 역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훼방을 놓은 헤지펀드로 악명을 떨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정보기술(IT) 업계 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M&A)을 촉발시켰다.
미국 컴퓨터(PC) 제조업체 델은 11일(현지시간) 세계 최대 데이터 저장장치 업체인 미국의 EMC를 670억달러, 우리 돈 약 76조6,000억원에 인수했다. 이는 종전 IT 기업 사상 최고 액수의 M&A였던 지난 5월 아바고테크놀로지의 브로드컴 인수 가격인 370억달러를 배 가까이 웃도는 액수다. 합병 회사는 마이클 델 최고경영자(CEO)가 계속 운영을 맡기로 했다.
이번 M&A는 엘리엇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지난해 지분을 인수하며 EMC의 5대 주주로 올라선 엘리엇은 주가 부양을 위해 EMC의 자회사 VM웨어를 매각하라고 지속적으로 압박했다. 이에 EMC가 엘리엇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카드가 델과 합병이다. EMC는 델과 합병해 엘리엇의 간섭에서 벗어나고 공격적 M&A 가능성을 없애 버렸다.
그 결과 델은 많은 것을 얻게 됐다. 우선 PC, 서버 등 하드웨어에 강점을 지닌 델은 EMC를 인수하면서 유명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업체인 VM웨어까지 확보해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높이게 됐다. 뿐만 아니라 꾸준히 EMC 인수를 노려온 휴렛팩커드(HP)와 경쟁에서도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됐다.
델은 한때 세계 세계 최대 PC 업체였지만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에 밀려 사세가 급격히 위축된 이후 사업 다각화를 추진했다. 현재 델은 기업용 IT시장 3대 장비인 서버와 네트워크, 저장장치 가운데 서버와 네트워크 분야에서 강세를 보이며 HP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델은 저장장치 분야에서 세계 5위에 머물렀으나 이번 EMC 인수로 단번에 세계 1위가 됐다. 이에 델 측은 “EMC와 합병을 통해 데이터 센터, 클라우드, 모바일, 보안 등 차세대 IT 전략분야에서 큰 발전을 이룰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서희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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