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도 가난하지 머리도 멍청하지/모아 둔 재산도 없지/아기를 낳고 결혼도 하잔 말이지?/학교도 보내잔 말이지?/나는 고졸이고 너는 지방대야" (중식이 밴드 '아기를 낳고 싶다니' 中)
구저분한 행색의 남자가 신나는 리듬에 맞춰 연신 배를 튕긴다. 패션 스타일은 촌스러운데 내뱉는 목소리와 멜로디는 제법 세련됐다. 특히 가사가 압권이다. 임신 후 결혼하자는 여자친구의 말에 돈 걱정부터 하는 남자의 모습이 왠지 밉지가 않다.
최근 Mnet '슈퍼스타K 7' TOP10에 오른 중식이 밴드가 'N포세대'(포기할 게 셀 수 없이 많은 세대를 통칭하는 신조어)를 대변하는 청춘스타로 급부상했다. 이들은 청춘의 복잡 미묘한 심리를 직설적으로 토해낼 뿐이다. 해답이 안 보이는 문제에 현실성 없는 대책 만을 남발하는 시대. 시답잖은 위로보다 솔직한 감정표출이 청춘에게는 오히려 더 크게 와 닿는 셈이다.
중식이 밴드 외에도 청춘을 대변하는 곡은 많다. 찬바람이 불면서 더욱 쓸쓸함을 느끼는 이 시대 청춘들. 절절한 표현으로 그들의 심금을 울린 노래와 가사를 곱씹어봤다.
1. 옥상달빛 '수고했어 오늘도'
2011년 발표된 '수고했어 오늘도'는 5년이 지난 지금도 라디오, TV 등에 종종 노출되는 대표 청춘별곡이다. 여성 듀엣 '옥상달빛'의 김윤주는 대학 졸업 후 재수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유난히 힘든 하루를 보냈을 때 들으면 좋은 힐링송으로도 유명하다.
● 가사:세상 사람들 모두 정답을 알긴 할까/힘든 일은 왜 한번에 일어날까/나에게 실망한 하루/눈물이 보이기 싫어 의미 없이 밤 하늘만 바라봐/작게 열어둔 문틈 사이로/슬픔 보다 더 큰 외로움이 다가와 더 날/수고했어 오늘도/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2. 다이다믹듀오 '고백'
청춘도 때로는 쉬고 싶다. 힙합가수 다이나믹듀오의 '고백'은 20대 중반의 청춘이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마음을 그렸다. 완전한 어른이라고 하기에는 설익고, 어리다고 하기에는 짊어진 무게가 큰 나이에 방황하는 청춘의 모습이다. 좋아하는 것마저 변해버린 자신을 씁쓸해하는 두 래퍼의 마음이 경쾌하게 표현됐다.
●가사:오토바이를 팔고 자동차를 사고파/시끄러운 클럽보단 산에 가고파/세 들어 사는 것도 지겨워 집을 사고파/나 자리 잡고파 이제 출세하고파/하나 둘 나이가 먹어 가니까/이상하게 시간이 점점 빨리 가/나도 이제 어른이야/군대 갔다 오면 곧 서른이야
3. 혁오 '위잉위잉'
MBC '무한도전' 출연으로 인지도를 쌓은 인디밴드 혁오. 대표곡 '위잉위잉'의 인기에는 독특한 혁오의 목소리도 한몫했지만, 가사의 힘도 컸다. 사랑을 사치로 여기는 백수 청춘의 처지를 감각적으로 그렸다.
●가사:사람들 북적대는 출근길의 지하철엔/좀처럼 카드 찍고 타볼 일이 전혀 없죠/집에서 뒹굴뒹굴 할일 없어 빈둥대는/내 모습 너무 초라해서 정말 죄송하죠/위잉위잉 하루살이도/
처량한 나를 비웃듯이 멀리 날아가죠/비잉비잉 돌아가는/세상도 나를 비웃듯이 계속 꿈틀대죠
4. 한희정 '미생' OST '내일'
청춘은 취업한 후에도 고통받는다. tvN 드라마 '미생'은 사회초년생의 고충뿐만 아니라 이들의 성장을 실감나게 그려내 '직장생활 지침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는 평이다.
드라마 배경음악으로 쓰인 OST '내일'을 부른 가수 한희정은 담백한 창법으로 쓸쓸한 청춘의 마음을 표현했다. 부모에 대한 감정까지 녹여낸 가사는 더욱 현실감을 살린다.
●가사: 셀수록 가슴이 아픈/엄마의 늘어만 가는 주름/조금 늦어도 괜찮단 입맞춤에 /또 하루가 가고/내일은 또 오고/이 세상은 바삐 움직이고/그렇게 앞만 보며 걸어가란 아버지 말에 울고
5. 장기하와 얼굴들 '싸구려 커피'
장기하와 얼굴들은 취업준비생의 자조를 녹여낸 '싸구려 커피'로 청춘스타 반열에 올랐다. 매 행사마다 '떼창'을 일으키면서 '장기하 교주님'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바 있다. '싸구려 커피'는 방 안 구석에서 믹스커피를 홀짝이는 외로운 청춘의 모습을 묘사했다.
●가사: 이제는 장판이 난지 내가 장판인지도 몰라/해가 뜨기도 전에 지는 이런 상황은 뭔가/싸구려 커피를 마신다/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눅눅한 비닐 장판에 발바닥이/쩍 달라붙었다 떨어진다
이소라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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