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전을 준비하는 2년 사이에 세월호 참사를 접했습니다. 이전까지는 비무장지대(DMZ)와 바닷가 풍경만으로 충분하다 생각했는데, 이제는 풍경 속에 숨어있는 죽음의 이야기를 드러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붉은 산수’ 연작으로 국내외에서 사랑받고 있는 화가 이세현(48)이 경기 파주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서 개인전 ‘레드-개꿈’을 열고 있다. 이번 개인전에서 그의 풍경화에는 처음으로 인물이 등장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그리면서 그림 속에 숨은 이야기를 좀 더 직접적으로 전달하려 했다”고 답했다.
등장인물이 상당히 ‘정치적’이다. 안중근 의사부터 함석헌 윤이상 백남준 등 역사적 위인들과 김대중 노무현 등 현대 정치인까지 화폭의 자리를 차지했다. 이들이 전쟁을 상징하는 버섯구름이나 성채가 보이는 풍경 앞에서 작가 자신과 가족들과 함께 어울려 등장한다. 농담처럼 ‘(현 정권에) 찍히지 않겠냐’고 묻자 대답이 단호하다. “그저 제 생각을 표현한 겁니다. 누구는 그렸고 누구는 그리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정치적으로 편향됐다고 주장한다면 좀 이상하지 않나요?”
정치적 관점과 관계없이, 등장인물에 그는 안타까운 애정을 담고 있다. 북한의 공격으로 침몰한 천안함을 그린 다른 풍경화도 마찬가지다. 풍경 속에 마치 산이나 섬처럼 보이는 해골 뼈는 바다가 품은 죽음의 민낯을 드러낸다. “천안함과 세월호 사건을 목격하면서, 아름다운 바다 풍경에도, 우리의 삶에도 항상 죽음이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해골은 일부러 알아보기 힘들게 그렸는데 현실의 뒷면에 항상 죽음이 숨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세현이 지금까지 ‘붉은 산수’로 그려온 풍경도 모두 아름다움의 이면에 공포와 안타까움을 품고 있다. 애초에 붉은색을 택한 것도 이 모순된 감정을 표현하려는 것이었다. 날 것 그대로 자연이 보존된 비무장지대는 전쟁의 위험을 품고 있다. 고향인 경남 거제와 통영 사이 수려한 바닷가 풍경은 개발로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 죽음과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그림에 투영돼 있다.
이세현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인기가 더 높은 작가다. 뉴욕, 런던, 밀라노, 암스테르담 등지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올해 5월에는 이탈리아의 패션 브랜드 페라가모와 협업해 스카프와 머플러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는 “동양의 산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그린다는 이유로 서양에서 인기가 있는 것 같다”며 “그림의 원래 의도와는 다른 해석이지만, 내 고향 거제와 통영의 풍경을 해외에 소개하는 셈이니 자부심도 느낀다”고 말했다. 이번 개인전에는 인물이 포함된 신작, 지금까지 그려온 풍경화 등 총 51점과 작품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밑그림 87점이 전시된다. 12월 20일까지. (031)955-4100
파주=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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