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발명과 함께 종이책 종말론이 제기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전 세계 독자들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서 여태 갈팡질팡하고 있다. 킨들, 스마트폰 등의 디지털 매체가 차세대 주자로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뜻일까, 아니면 종이의 매력이 그만큼 간단치 않다는 의미일까.
새로 출간된 ‘우리 시대의 책’(마음산책)의 저자 크레이그 모드씨는 독자의 연령대, 직업, 콘텐츠의 성격에 따라 최적의 매체가 따로 있다고 말한다. 일례로 신문은 디지털, 잡지엔 종이가 좀더 어울리며 잡지 중에서도 독립잡지는 종이, 대중잡지는 디지털 매체가 적합하다는 식이다. 어떤 매체가 판도를 휩쓰느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업계에서, 그는 “중요한 건 독서 체험의 질”이라는 사실을 다시 상기시킨다. 세계 최초의 소셜 매거진 ‘플립보드’의 디자이너를 지낸 모드는 책과 미디어, 스토리텔링의 미래에 관심을 갖고 콘텐츠개발자, 작가,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2015 파주북소리 행사에서 강연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를 8일 만났다.
_독서 행위에 있어 종이와 디지털 기기 모두 나름의 역할이 있다고 했는데, 예를 들면?
“로맨스나 뱀파이어를 다룬 소설은 전자책으로 많이 소비되는 반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종이로 더 많이 팔린다. 그건 독자가 텍스트와 맺는 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디지털은 휘발성이 강한, 예를 들면 신문 기사 같은 콘텐츠와 매우 잘 어울린다. 필요한 정보를 뽑아봐야 하는 학술적인 책들도 디지털 매체의 검색 기능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다. 그러나 10년 뒤에도 다시 들춰보고 싶은 하루키의 책은 종이로 보는 것이 좋다. 잡지는 중간적 성격을 띠고 있어 70~80%는 디지털, 20%는 종이가 어울린다. 나는 개인적으로 책과 장기적인 관계를 맺는 성향이라 종이를 선호한다. 곁에서 떠나지 않고 대를 물려줄 수도 있는 종이책의 특성은 독자에게 강력한 신뢰감을 준다.”
_종이책과 전자책은 종종 대립 관계로 묘사된다. 두 매체가 결합 혹은 상호보완할 방법은?
“이상적인 건 종이책을 샀을 때 전자책을 무료로 제공한다거나 할인 혜택을 줘 둘 다 소유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두 매체가 장단점이 다르기 때문에 대립 관계라기보다는 보완 관계가 맞으며, 서로의 특징을 더 많이 주고 받을 필요가 있다. 내일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읽어야 하는데 종이책은 도쿄에 있기 때문에 비행기에서 킨들로 볼 생각이다. 덧붙여 지금까지의 전자책은 진정한 의미의 전자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짜 전자책은 처음부터 디지털 매체를 염두에 두고 저술하고 제작돼야 한다고 본다. 처음부터 디지털 매체만을 고려하고 제작돼, 종이로 변환이 불가능한 책이 나온다면 흥미로울 것이다.”
_한국에선 아직 전자책 시장이 활성화하지 않은 편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중요한 건 스크린에 최적화된 타이포그래피다. 한국의 타이포그래피를 잘 몰라서 구체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화면에 적합한 폰트와 여백의 배치, 적절한 페이지 분리, 그리고 마진에 주목해야 한다. 독자가 페이지 간 이동을 하거나 스크롤링을 할 때 종이 책만큼 믿을 수 있게 작동하고 있다는 느낌을 줘야 한다.”
_미래에 이상적인 독서 행위는 어떤 모습이 될까?
“우리가 그때 뭘 읽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문학책의 경우 술술 읽어 넘기기 보다 오래 생각하며 읽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텍스트에 오래 머무를 땐 뭔가 쥐고 있는 게 훨씬 몰입이 잘 된다. 고요하게 집중해서 독서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미래에도 종이책을 찾을 것이다. 책의 미래는 단순히 기술의 문제도, 어떤 매체가 더 뛰어난가의 문제도 아니다. 그건 인간 본성의 문제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유해린 인턴기자 (이화여대 국문과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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