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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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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됐으면”

입력
2015.10.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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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도서전 마지막날인 11일, 행사장인 서울 코엑스의 책만남관에서 조금 특별한 공개방송이 있었다. 문학 전문 인터넷 라디오 ‘문장의 소리’가 노숙인이 쓴 시와 수필을 공모하는 민들레문학상의 제2회(2013년) 수상자, 김수현(56), 김영철(51)씨를 초대해 대화를 나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는 이 상은 2012년 시작됐다. 노숙인의 문화적 예술적 소양을 일깨우고 창작을 통해 자존감을 되찾도록 하려는 상이다.

시 ‘세차장 바닥을 흐르는 물’로 장려상을 받은 김수현씨는 현재 노숙인 시설에서, ‘목숨’이라는 시로 대상을 받은 김영철씨는 민들레문학상 수상자가 원하면 주최측이 내주는 보증금 100만원의 매입 임대주택에 살고 있다. 김수현씨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시를 읽어줬다. 뭉클한 게 싫다고 했다. 반면 김영철씨는 낮고 깊은 음성으로, 천천히 ‘목숨’을 낭송했다. 어렵고 힘들게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며 엿새 동안 밤을 새며 썼다는 이 시는 ‘어릴 적 내 별명은 부엉이’로 시작해 이렇게 끝난다. “이제는 별명이 없다 아무도 나에게/관심도 없다/지금 나의 집은 남산타워가 보이는 예배당/거대한 예배당 속의 성냥갑만한 쪽방// 주변엔 공짜밥 주는 곳이 몇 군데/노숙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길게 줄을 선다//이곳에서 내가 늙어 죽는 것인가/두렵다”

시와 인연이 없던 두 사람은 노숙인 자활시설에서 한 달에 두 번 문학 특강을 들으며 숙제로 시를 썼다. 작가들이 재능 기부로 3개월 정도 진행하는 글쓰기 교실이다. 김영철씨가 말했다. “성격이 내성적이라 내 이야기를 안 하는 편이었다. 해봤자 들어줄 사람도 없고 위로 받을 대상도 없고. 써 본 적도 없는 시를 숙제니까 쓰긴 했는데, 삶의 고통을 주제로 쓰라고 할 줄은 몰랐다. 한 번 써보면 (응어리가 풀려) 시원할 것 같기도 했지만, 그렇진 않더라. 거의 잊고 살았던 과거를 다시 생각하게 돼서. 열 번 고쳐 썼다.”

김수현씨는 “써놓고 보면 이게 시인지 일기인지 잘 모르겠는 게 힘들더라“고 했다. 하지만 방송 후 따로 만난 자리에 동석한 평론가 박경장(55)씨는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감각과 감수성에 리듬과 시상 전개도 매우 자연스러운 모더니스트 시인”이라고 평했다.

노숙인 인문학교실로 유명한 성프란시스대학에서 8년째 강의하며 노숙인들과 가족처럼 지낸다는 박씨는 지난해부터 민들레 문학 특강에 참여하고 있다. 그 전에는 대학에서 20년 정도 가르쳤다. “학생들은 학점 따려고 듣고 글쓰기도 테크닉으로 받아들이지만, 이 분들은 아무리 어려운 철학적 명제나 문장도 자기 삶으로 가져와서 아주 쉽게, 때로는 아주 명쾌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거든요. 우리 같은 먹물이 오히려 배우는 게 많습니다.”

노숙인 민들레문학상 수상자 모임인 역전문학회의 9월 합평회. 매달 작가를 초청해 대화를 나누고 작품 평가도 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노숙인 민들레문학상 수상자 모임인 역전문학회의 9월 합평회. 매달 작가를 초청해 대화를 나누고 작품 평가도 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민들레문학상은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 장려상 등 지금까지 30여 명의 수상자를 냈다. 수상자들은 올해 3월 나주로 1박2일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처음 해본 이도 있었다는 그 행사를 계기로 수상자 모임 ‘역전문학회’가 만들어졌다. ‘인생 역전’의 꿈과 노숙인 많은 곳이 역전임을 모두 품은 이름이다. 역전문학회는 매달 한 번 모여서 합평회를 한다. 작가를 초청해 대화를 나누고 함께 노래도 부른다.

두 사람은 앞으로 어떤 시를 쓰고 싶다거나 시를 쓰니까 어떤 변화가 오더라 같은 말을전혀 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두렵다’는 말로 수상작 ‘목숨’을 마무리한 김영철씨가 바람을 말했다. “내 시를 보면서 누군가는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어요. 나처럼 살지 말라는 메시지도요.”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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