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내 금리 인상은 약속 아니다"
피셔 부의장 발언에 분위기 반전… 내년 3월로 전망 수정 잇달아
신흥국들 "불확실성에 피해" 성토
원·달러 환율 15.5원 급락, 3개월 만에 최저치 기록
미국 기준금리 인상 시기가 또다시 모호해지고 있다. 스탠리 피셔 연방준비제도(연준) 부의장이 11일(현지시간) "연내 금리인상은 예상일 뿐 약속이 아니다"는 말로 '연막탄'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연내 금리인상 가능성을 강조한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의 지난달(25일) 강연과는 결이 다른 연준 2인자의 발언을 계기로 미국 금리인상 연기 전망이 재차 힘을 얻는 분위기다.
피셔 부의장은 이날 페루 리마에서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의 부대행사로 열린 세미나에서 "첫 금리인상 시점과 이후 인상속도 조정은 향후 경제상황에 달려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특히 "(중국을 위시한)세계경제 불안이 미국 경기회복을 제약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해외경제 상황이 연준 통화정책 방향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한 옐런 의장의 지난달 강연과는 차이가 있는 발언이다. 그는 "많은 신흥국 당국자들이 연준에 즉각적인 금리인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연준은 금리정책 변경이 글로벌 시장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도 했다. 피셔 부의장은 아울러 고용지표 부진도 미국 경기 제약요인으로 지목했다. 두 달 연속 시장 예상치를 크게 하회한 비농업부문 취업자수는 연준 통화정책회의에서 검토되지 않은 최신 통계로, 통화정책의 양대 고려사항인 고용과 물가 중 고용 개선세를 높이 평가해온 연준의 기존 입장에 변화를 줄 수도 있는 변수다.
피셔 부의장의 이날 발언은 연준에서 옐런 의장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지닌 그가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로 선회했다는 해석을 낳고 있다. 그는 지난 8월 잭슨홀미팅 연설에서 "통화정책이 상당한 시차를 두고 실물경제에 영향을 주는 만큼 (물가 목표치 도달을)기다릴 수 없다"고 발언, "연준이 매파(긴축 선호)로 돌아섰다"는 해석과 함께 '9월 금리인상설'을 확산시킨 바 있다.
강경 매파로 분류되는 데니스 록하트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 총재의 최근 발언도 "연준 내 기류가 변했다"는 해석을 낳고 있다. 그는 지난 9일 공개행사에서 "연내 금리인상이 적절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최근 경기지표를 보면 몇 주 전보다 하방리스크가 더 느껴진다"며 한결 유보적 자세를 취했다.
시장에선 '12월 인상설'과 '내년 인상설'의 팽팽한 균형이 급속히 무너지는 분위기다. 글로벌 투자은행 중 도이체방크, BNP파리바 등이 미국 금리가 오는 12월이 아닌 내년 3월에 오를 것으로 전망을 수정했고, 골드만삭스, 크레디트스위스 등 12월 인상 전망을 유지한 곳도 그 가능성을 낮췄다. 투자자들이 점치는 미국 금리 향방을 보여주는 대표 지표인 연방기금 금리선물 시장에선 내년 1월 인상 확률이 44.9%, 3월 인상 확률이 59.3%로 크게 오른 반면, 12월 인상 확률은 37.4%에 머물렀다. 한 달 전만 해도 12월 금리인상 확률은 59%에 이르렀다.
연내 금리 인상에 대한 약화된 기대감은 시장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12일 서울 외환시장에 원ㆍ달러 환율은 달러당 15.5원 급락한 1,143.5원까지 추락, 3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미국 금리 향방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이날 폐막한 IMF-WB 연차총회에선 미국의 조속한 금리인상을 요구하는 신흥국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자본유출, 통화약세 등 미국 금리 인상의 악영향보다 불확실성이 장기화되면서 입는 피해가 더 크다는 판단에서다. 수크데이브 싱 말레이시아 중앙은행 부총재는 "미국 금리인상 지연은 신흥국 위기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고, 타르만 샨무가르트남 싱가포르 재무장관도 "미국 금리가 올라가기를 원하는 신흥국이 늘어나고 있는데, 금리 인상을 원해서가 아니라 불확실성을 줄이고 싶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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