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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국사 국정화, 이런 속도전으로 뭘 얻을 수 있나

입력
2015.10.12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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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인정 교과서 편향 주장은 자가당착

학계 외면ㆍ졸속 제작으로 실패 뻔해

대통령, 국민에 설명하고 이해 구해야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전환을 끝내 강행했다. 교육부는 2017년부터 중학교 ‘역사’와 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발행하는 내용의 ‘교과용도서 구분안’을 행정예고 했다. 황우여 교육부장관은 “자라나는 미래 세대에게 우리 역사를 올바르고 균형있게 가르치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한국사 국정화 문제는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와 학계 전체를 찬반으로 나누면서 우리 사회를 격렬한 갈등의 소용돌이에 몰아 넣을 것이 명약관화해지고 있다.

정부와 여당의 국정화 전환 결정과 발표를 보면 속도전을 방불케 한다. 이념 논쟁과 역사적 갈등 등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여부는 첨예한 논쟁이 뒤따르는 중대한 사안이다. 하지만 정부는 공청회 등 이렇다 할 여론 수렴 과정조차 거치지 않았다. 그저께 열린 당정협의도 국정화 방침을 이미 결정해놓고 형식적으로 마련한 자리에 불과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우격다짐으로 국정화를 관철시키려는 것인지 의문이다. 시국선언과 촛불집회 등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속전속결식 밀어붙이기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국정화를 추진하는 정부와 여당의 논리는 한마디로 현재의 검정교과서들이 이념적으로 편향돼 있다는 것인데, 이는 자가당착이다. 교과서는 일반서적처럼 저자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책이 아니다.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이라는 틀 안에서 검정에 통과해야 한다. 지금 사용되는 8종의 검정 교과서는 이명박 정부에서 공시한 집필기준에 따른 것이다. 교육부가 검정을 통과시켜놓고 좌편향 교과서라고 비난하는 건 심각한 자기모순이다.

사회적 토론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국정교과서가 성공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학계와 일선 학교 현장에서 강한 반발을 사고 있는 국정교과서는 아무리 강제성을 띠고 보급되더라도 결과적으로 외면 받고 힘을 잃을 것이다. 학계에서 존경 받는 학자들이 ‘어용’이라는 낙인을 우려해 참여를 꺼리게 되면 다른 방향으로의 편향성이 더욱 심해질 우려가 있다. 통상 2~3년인 제작기간을 무시하고 집필, 심의, 현장검토, 인쇄, 배포 등의 전 과정을 1년여 만에 해내라는 것은 졸속 교과서를 만들라는 애기밖에 안 된다. 명분에서도 실리에서도 한국사 국정화는 취약성을 내포하고 있다.

아쉬운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다. 박 대통령은 국정화 발표를 앞두고 별도의 입장을 내놓지 않은 채 침묵했다. 항간에는 정부ㆍ여당의 집요한 국정화 관철 시도가 박 대통령의 지대한 관심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정도의 중대한 문제라면 당연히 박 대통령이 나서 국민들에게 국정화 필요성을 소상이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게 순리다. 설혹 그게 아니라 해도 대한민국이 편 가르기로 두 쪽으로 나뉘는 상황이라면 국정책임자로서 뭔가 납득할 만한 애기를 하는 게 도리다. 사회가 국정화 문제로 온통 들끓는데도 외면하듯 자리를 비우는 것은 책임 있는 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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