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터키 수도 앙카라에서 발생한 연쇄 자살폭탄 테러로 128명이 사망한 가운데, 국민들의 분노가 최악의 자폭 테러를 막지 못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현 정권을 비난하는 반정부 시위로 이어지고 있다. 이번 테러는 특히 터키 총선을 3주 앞두고 발생한 것이어서 정치권 안팎에서는 “현 정부가 표를 얻기 위해 치안 불안 분위기를 조장하려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 까지 나오고 있다.
터키 정부에 따르면 10일 오전 10시께 앙카라 기차역 광장에서 친 쿠르드 성향 집회 도중 두 차례에 걸쳐 자살폭탄 테러가 일어났으며, 현재까지 모두 128명이 숨지고 247명이 부상한 것으로 집계됐다.
수도 한 복판에서 발생한 최악의 자폭 테러를 사전에 막지 못한 정부를 비난하는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고 있다. 11일 앙카라 중앙광장에는 수 천명의 추모객들이 집결, “에르도안은 살인자” “정부 퇴진” 등 반정부 슬로건을 외치며 에르도안 정부를 비판했다. 일부 시위대는 “조문을 하겠다”며 꽃을 들고 테러 현장인 앙카라 기차역으로 향했고, 경찰은 이를 해산시키기 위해 최루탄까지 발사했다. 결국 70여명만 앙카라 기차역 주변, 제한 장소에서 애도를 표했다. 한 시민은 “테러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은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앞선 10일 밤 이스탄불에서도 시위대가 거리로 몰려나와 테러 비난 집회를 갖던 중 진압 경찰과 충돌했다.
이번 집회는 비정부기구, 좌파단체, 쿠르드계 야당인 인민민주당(HDP) 등이 주도한 것으로, 10일 평화 집회를 주최했던 단체들이 이번에도 나섰다. 또 쿠르드계 정당인 평화민주당(BDP) 총재 등 야권 인사들도 대거 참석했다.
반 정부 시위대는 이번 폭탄 테러가 총선(11월1일)을 3주 앞둔 민감한 시기에 발생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총선 승리를 위해 치안 불안감을 조장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끄는 정의개발당(AKP)은 지난 6월 총선에서 과반 의석 확보 및 연립 정부 구성에 모두 실패, 조기 총선을 치를 예정이었다. 지난 총선에서 쿠르드계 정당인 HDP는 전체 550석 가운데 78석을 확보하면서 대약진에 성공해 에르도안 정권의 재집권에 치명타를 입혔다.
에르도안 정권으로서는 이번 총선에서 과반을 차지하려면 HDP를 밀어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법치ㆍ안보 정책을 내건 에르도안 대통령이 고의로 쿠르드 반군과의 갈등에 기름을 부어 표를 얻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터키인들이 많다”고 보도했다. 영국의 한 정치평론가도 “유권자를 끌어 모으려는 갈등의 전략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터키 정부는 “공격 방식이나 수법 등으로 미뤄 수니파 과격 단체 이슬람국가(IS)의 소행일 것”이라며 정부 연루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심한 내부 분열에도 총선은 예정대로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터키 정부는 “총선 연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고 HDP 역시 예정대로 치르자는 입장이다.
한편 터키 공군은 테러 발생 다음날인 11일 쿠르드 반군을 겨냥, 터키 남동부와 이라크 북부접경지대를 집중 타격했다고 BBC등이 보도했다. 또 우리나라와 멕시코, 인도네시아, 호주 등 터키를 제외한 중견국 협의체 믹타(MIKTA) 회원국 외교장관들은 이날 공동성명을 내고 “테러리즘은 우리 시대 중대한 도전 가운데 하나”라며 “터키 국민과 연대해 공통 위협에 맞설 것”이라고 밝혔다.
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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