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폭스바겐의 배기가스 수치 조작사건은 자동차 강국 독일의 명성과 신뢰에 큰 상처를 남겼으며, 경쟁국들은 내심 반사이익을 기대하며 대응 전략을 마련하고 있어 향후 전세계 자동차시장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폭스바겐은 Volk(국민, 대중), Wagen(차, 마차)이 합성된 독일어 단어로, 단어적인 의미만으로도 독일의 국민차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폭스바겐은 단순히 딱정벌레(Kaefer, 영문 beetle), 독일의 대중차인 골프, 한국에서 중산층이 선호하던 중형차 파사트를 생산하는 독일의 자동차기업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아우디, 포르셰, 람보르기니, 스코다, 세아트 등 총 11개 완성차 브랜드를 소유하고 총 1,100만대의 차량을 생산, 판매하는 세계 제 2위 자동차회사다.
폭스바겐의 독일 내에서의 위상은 한국에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의 비중보다 크면 크지 결코 작지 않다. 그래서 배기가스 조작사건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독일인들은 폭스바겐의 위상에는 큰 변함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독일 국민들의 이 같은 믿음의 근거는 무엇일까?
폭스바겐의 역사
폭스바겐의 시초는 나치정권과 관련이 깊다. 히틀러는 1933년 집권 후 당시 중산층이 1년 정도 저축해 구입할 수 있는 금액인 당시 2,000제국마르크(RM) 이하 가격에, 시속 100㎞를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는 차량을 찾고 있었고, 이 기준에 만족할 만한 차량을 개발한 사람이 폭스바겐의 창시자인 페르디난트 포르셰 박사다.
당시 개발된 차량이 바로 ‘비틀(BEETLE)’, 딱정벌레차다. 당시 나치 정권은 2,000마르크의 차량을 전 국민들에게 공급한다고 선전하며 당시 정권유지를 위한 방편으로 삼았고, 독일국민들은 처음으로 ‘1가정 1차량’의 꿈을 가지게 만들었다.
포르셰 박사는 나치 정권하에서 타이거탱크를 개발하는 데에 협조하고, 슈퍼탱크를 개발하는 등 나치 정권에 적극 협조했다. 전후 폭스바겐은 포르셰박사의 소유가 아닌 국영기업으로서 민간차량인 딱정벌레차량을 만드는 전문 자동차국영기업으로 탈바꿈한다.
전쟁패배, 전 독일국민의 10%가 사망한 2차 세계대전, 분단의 아픔, 독일인들의 고난과 배고픔을 잊게 만든 독일의 상징적인 기업이 바로 폭스바겐이다. 비틀은 나치정권하에서는 선전도구로만 쓰였을 뿐 제대로 보급되지 못했으나, 패망 이후에는 ‘독일의 라인강’의 기적의 상징적인 존재로 부각되고, 1996년 멕시코 공장에서 마지막 딱정벌레 1세대 차가 단종될 때까지 총 1,600만대를 생산 판매했다. 비틀은 미국인들에도 친숙해 1960년대 비틀 모델이 ‘허비(HERBIE)’라는 이름으로 할리우드 영화 주인공으로 등장했을 정도다. 비틀은 ‘메이드 인 저머니’가 믿을 수 있는 제품이라는 인식전환을 이룬 차량이 됐고 폭스바겐은 독일인만의 국민차가 아닌 세계인의 국민차라는 명성을 얻게 됐다.
비틀 이후에는 골프가 현재 7세대까지 변신을 거듭하며 지난 수십년간 단일차량으로 판매량 부동의 1위를 차지하며, 누적 생산량이 3,000만대에 이르는 대표적 폭스바겐 모델로 자리잡았다. 2004년 독일의 경제 침체기에 독일의 1인당 국민부채가 2만2,000유로로 늘어나자, 당시 독일 언론에서는 “신생아가 태어나는 순간 골프 한대를 빚지고 있다”는 비유를 사용할 정도였다.
독일 승용차시장의 시장 점유율을 살펴봐도 폭스바겐의 위상을 쉽게 알 수 있다. 벤츠, BMW, 오펠 등 기라성 같은 완성차 메이커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고 연간 자동차 판매대수가 300만대를 상회하는 독일 완성차 시장에서 지난해 아우디 포르셰 스코다 세아트 등 폭스바겐과 그 자회사의 시장점유율은 48%대로 전체 독일 시장점유율의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참고로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독일시장점유율은 2014년 기준 5.4%이다.
독일 폭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사건이 독일인의 자부심에 얼마나 큰 충격이 됐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과거 1960년대 후반 17만명 종업원이 근무하던 종합가전그룹 AEG가 해체되었을 때니, 독일 굴지 제약회사인 HOECHST가 외국기업에 인수합병 되었을 때, 지멘스가 핸드폰 분야를 포기할 때와도 비교가 되지 않는 아픔을 현재 독일인들은 느끼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독일 제조업의 얼굴이자, 독일의 기술력과 엔지니어링의 상징인 폭스바겐이 기술적 결함이 아닌 고의적 소프트웨어 조작을 통해 디젤차량의 실험실 배기가스수치를 조작했다는 것은 오랜 노력으로 쌓아 올린 ‘메이드 인 저머니’의 신뢰를 한꺼번에 무너뜨리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독일 경제주간 비르츠샤프트보케(Wirtschaftswoche)가 2015년 제 40호의 타이틀을 ‘Die Luege’(거짓말)로 정하고 폭스바겐의 배기가스조작사건을 매섭게 비판한데 이어 지난 2일자 경제일간지 한델스브라트(Handelsblatt)에서 ‘Tatort Volkswagen’(범죄현장 폭스바겐)이란 특집기사를 13페이지에 걸쳐 게재하며 폭스바겐의 문제점을 집중해부하기도 했다.
신뢰와 완벽주의의 상징인 폭스바겐의 경영층과 엔지니어들이 야기한 이번 사건은 독일 대중, 언론, 정치권, 재계에서 동시에 크나큰 충격으로 받아 들이고 있고 최근 중동난민사태와 더불어 독일의 2대 이슈로 자리 잡고 있다.
왜 이런 사태가 야기되었을까
토론문화, 합리적 사고, 신뢰와 솔직함을 강조하던 독일사회에서 어떻게 폭스바겐 배기가스조작 스캔들이 발생할 수 있었을까. 표면적으로는 친환경 디젤차량에 대한 개발 압박과 기술적 한계에서 그 표면적인 해답을 찾을 수도 있으나, 근본적인 원인은 독일의 역사와 독일인의 사고방식에서도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독일 교육과정에서는 수업참여도와 시험을 ‘50 대 50’으로 평가하고 수업 중에 발표, 질문, 참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평상시 교우관계, 사회성에 큰 의미를 두는 것이다. 그런데 독일의 토론문화는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의 의견에 다른 구성원들이 따르는 경향이 짙다. 또 이들이 조직의 리더로서 부상하는 경우도 많다.
독일은 전후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의 재부상을 막기 위해 교육에서 활발한 토론과 이를 통한 이성적 판단을 중요시해왔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폭스바겐의 조작사건은 이런 토론 문화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리더를 선발하는 데까지만 적용될 뿐 정작 리더가 선발된 이후에는 그 리더십에 무비판적으로 복종하는 과거 독일의 잔재가 남아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지난 십여 년간 성공적 경영성과를 이룬 폭스바겐 최고 경영진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가 이번 스캔들의 주요 원인인 것이다.
십여년 전 일본 자동차기업들의 하이브리드 기술을 앞세운 연료효율 공세에 맞서 폭스바겐과 독일기업들은 친환경 저연비 디젤차량을 앞세워 역공세에 나섰고, 사실상 승리를 거둬왔다. 그런데 저연비는 실현하였으나, 친환경 분야에서는 디젤연료의 기술적인 한계를 넘지 못한 것이 이번 사태의 발단이다.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로 미뤄보면 폭스바겐 최고 경영진은 무리하게 친환경 기준 달성을 중간관리자들에게 강요했고, 중간관리자들은 요구조건을 무조건 따르고자 조작이라는 범죄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폭스바겐 사태, 해결방안은
폭스바겐은 일단 독일인 특유의 정공법을 통해 이번 사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잘못을 솔직하게 시인하고,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폭스바겐은 약 180억유로(약 25조원)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으며, 또 추가투자 보류 등을 통해 수백억 달러 정도의 피해 보상은 경영상 큰 타격 없이 집행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소비자들의 리콜과 집단소송의 총액을 가늠할 수 없는 현재의 상황으로는 최악의 경우 그룹계열사중 핵심 계열사를 분리 등의 극단의 조치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폭스바겐 신임 마티아스 뮐러회장은 배기가스 조작사건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소비자들에 대한 솔직한 사과를 독일기업의 대처능력을 보여 줄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번 배기가스 조작사건으로 적어도 향후 2, 3년간 폭스바겐은 비상 경영 체제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독일의 상징, 독일의 자존심인 폭스바겐은 독일인들의 믿음과 솔직한 반성을 기반으로 다시 일어설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피해국들에게 꾸준하고 일관된 진실성 있는 반성과 피해복구 노력을 통하여 전후 70년 가장 도덕적이고 신뢰성 있는 국가로 거듭난 독일 역사의 교훈을 폭스바겐도 따라 갈 것이다.
현재 폭스바겐에 납품하고 있는 협력업체들의 경우 주문 감소 등 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전세계적 대량 리콜이 시작되고, 집단 소송 등 구체적인 피해상황이 확인되는 연말께부터 폭스바겐과 거래하는 우리 기업들에게도 실질적 충격이 파급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대비가 필요하다.
KOTRA 함부르크무역관 윤현철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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