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이 갈수록 소수 거부들의 기부금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타임스(NYT)는 10일 올 상반기 기부된 미국 대선 자금 중 절반에 가까운 1억7,600만 달러(약 2,050억원)가 불과 158개 가문에 의해 모금됐다고 보도했다. 또 다른 200개 가문이 낸 기부금까지 합하면 전체 대선 자금의 절반을 훌쩍 넘는다.
NYT에 따르면 올 상반기까지 대규모 대선 기부금을 낸 158개 가문은 미국인 평균 연봉보다 최대 4배 가량을 벌 정도로 ‘슈퍼갑부’들이다. 대표적으로 최근까지 총 30만 달러를 공화당에 기부한 펀드 운용사 시타델의 케네스 그리핀 최고경영자(CEO)는 세금을 제외하고도 매달 6,850만 달러를 번다.
이들 158개 가문 중 대다수는 최근 수십년간 미국 경제를 이끈 금융(64개)과 에너지(17개) 산업에서 활동 중이다. 특히 에너지와 금융 2개 부문이 낸 기부금은 158개 가문이 기부한 전체 대선 자금 가운데 절반을 넘어선다.
또 민주당보다 공화당을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하다. 공화당을 지지하는 가문은 138개에 달하는 반면 민주당 지지 가문은 20개에 불과해 6배 이상 차이가 났다. NYT는 “수천만 달러의 기부금이 규제 축소, 세율 인하를 주장하는 공화당 후보들을 지지하는 데 쓰이고 있다”며 “이는 곧 자신들의 부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분석했다.
이들 가문은 단순히 기부에서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모임을 꾸려 정치적 기반을 확대하는 중이다. 일부는 석유 재벌 코흐 형제가 매년 두 번씩 주최하는 세미나에 참석, 공화당 후보 중 어떤 이들에 지원을 집중할지 논의한다. 미국 월가의 큰손 투자자이자 민주당 핵심 기부자인 조지 소로스 역시 네트워크를 형성해 기후 변화와 조세 문제 등과 관련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이다.
NYT는 이처럼 미국 대선판을 거머쥔 소수 거부들의 가치관이 미국인 대부분의 가치관과 충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6월 NYT와 CBS 뉴스의 공동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3분의 2가 연봉 100만 달러 이상을 받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답해 지속적인 세율 인하를 주장하는 이들 가문과 입장 차를 보였다. 또 정부 규제 완화를 주창하는 거부들과 다르게 응답자 중 60% 가량은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선거자금 개혁촉구단체인 ‘민주주의21’의 프레드 워다이머 회장은 “부패방지를 위해 후보 별 기부금 모집을 제한해야 한다는 유권자들의 요구를 무시하는 행태”라며 “소수 기부자들에 의한 대선 기부 모금이 부패시스템을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지후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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