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즈음에 방콕에 다녀왔다. 여름 내 ‘방콕’만 하고 있었는데 친구 덕분이었다. 저가항공을 타고 날아가 친구가 얻어놓은 숙소에 일주일을 머물렀다. 방콕에 도착한 다음날, 카오산 로드를 찾아갔다. 내게 카오산 로드는 돌아오기 싫은 고향 같은 곳이었다. 소란과 번잡함, 열기와 혼돈으로 가득한 곳.
하지만 그곳에는 여행자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있었다. 중고품을 사고 파는 가게의 “뭐든지 다 삽니다”라고 적힌 말처럼. 값 싼 항공권도, 가짜 기자증도, 중고 배낭도, 최신 카메라도, 너덜너덜한 가이드북도 다 사고 팔 수 있었다. 카오산은 여행이 시작되고 끝나는 곳이었다. 막 집을 나온 사람들과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로 늘 붐볐다. 어떤 이들은 이제 모험을 시작할 참이었고, 어떤 이들은 책 한 권으로도 담을 수 없는 온갖 일을 경험한 뒤였다.
12년 전 처음 카오산 로드에 짐을 풀었을 때, 나는 세계일주를 시작한지 6개월째였다. 그곳에는 나처럼 장기여행을 하는 청춘들이 가득했다. 어디로든 가고 싶었으나 그곳이 어디인지 몰랐고, 무엇이든 되고 싶었지만 그게 무엇인지 몰랐던 청춘들. 등에 멘 제 몸만 한 배낭이 어쩌지 못한 젊음의 무게 같았다.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짠해졌다. 저기, 나와 똑같은 열병을 앓는 이가 있구나. 나처럼 힘들게 떠나온 사람이 있구나. 나처럼 무언가를 찾고 있는 이가 있구나.
그때 우리가 찾았던 건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다만 간절히 원했을 뿐이었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이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지금까지의 내가 아닌 다른 나를. 자신을 둘러싼 모든 세계를 의심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것. 끝까지 가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믿는 것. 그게 청춘이었다. 끝까지 갔다가 돌아온 자리가 처음의 그 자리라 해도. 높고 거친 자유의 풍랑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고, 다시 찾고, 새롭게 만들어가는 곳. 카오산 로드는 그런 곳이었다.
세상의 모든 여행자들이 모인 그 거리에 절대적인 진리 같은 것은 없었다. 권위에 저항하고, 복종을 거부하고, 규율을 깨뜨리며 자유의 깃발에 매달려 본 후에야 우리는 깨달았다. 그 모든 자유에는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을, 스스로 만든 규율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 시절, 훔친 돈을 쓰듯 젊음을 탕진하던 이들은 어느 도시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이 들어가고 있을까.
아스팔트 도로에 주저앉아 맥주를 마시는 어린 얼굴들 위로 문득 한 소년의 얼굴이 겹쳐졌다. 방콕으로 떠나기 며칠 전, 시립 도서관에서 강연을 마친 후였다. 교복을 입고 있던 고등학생이 내게 물었다. “여행 중에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웠던 때가 언제였나요?” 당혹스러웠다. 이 나라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믿음을 상실한 상태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질문의 방향 때문이었다.
“여행 중에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던 때가 언제였나요?”라고 물었다면 할 말이 많았을 것이다. 여행은 조국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 아니라 독립된 개인으로서의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기에. 소년에게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만의 카오산 로드에 서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자랑스러운 나라 이전에 당당한 자신을 만들어가는 일부터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그도 곧 겪게 될 것이다.
여행은 제 힘으로 길을 떠나 끝없는 질문과 마주함으로써 자신이 지금껏 쌓아온 세계를 부수는 행위다. 카오산 로드에 서있던 청춘들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 이들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살던 나라는 무엇이었나, 나는 왜 여기 서있는가, 왜 돌아가야 하는가를 물었던 사람들. 답을 찾지 못해도 괜찮았다. 그 질문들이 쌓이고 쌓여 단단한 내공을 만들어줄 테니. 여행에 ‘어디로’는 중요하지 않다. 의미 있는 건 ‘어떻게’이다. 질문을 던져주는 곳, 지금껏 진리라고 믿었던 것을 의심하게 만드는 곳이라면 그곳이 카오산 로드다.
김남희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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