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오늘도 거침없이 걸어와 맨 앞자리에 당당하게 섰다. 그날 이전까지 아침 7시 5분쯤 우리 동네 마을버스 정류장의 풍경은 한결같았다. 이 정류장에 서는 마을버스 노선은 오직 1개뿐이라 다른 정류장처럼 승객이 섞이지 않았다. 따라서 마을버스 정류장 표지판 뒤 쪽에 줄 비슷한 행령이 만들어지곤 했다. 일렬의 줄은 아니었고 섞이기도 했지만 여학생이나 젊은 여자회사원들이 앞쪽에 서고 젊은 남자들은 정류장 기둥에서 조금 멀리 서 있곤 했고, 중년 남자들은 조금 더 먼 쪽에 서 있곤 했다.
매일 아침 그 시각에 마을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대체로 일정하여 아침마다 인사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누가 오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어쩌다 가끔 타인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는 대담한 자들이 아침의 암묵적 질서를 깨고 불쑥 앞자리를 차지했지만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 그러려니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정류장의 평화로운 질서를 파괴한 여인이 등장했다. 긴 생머리 그녀가 지난 관행을 송두리째 뒤엎어버린 것이다. 그날도 줄 비슷한 어중간한 형태로 옹기종기 정류장 표지판 옆에 사람들이 서 있었는데 처음 본 그 여인이 저쪽에서 성큼성큼 기운차게 걸어오는가 싶더니 중년 남자들의 자리를 지나 젊은 남자들의 주변을 지나치더니 여학생과 젊은 여자 회사원들의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서 마침내 정류장 맨 앞에 섰다. 정류장 표지판 쇠기둥에 살짝 기대어 핸드폰에 열중하는 모습이 당당했다.
이렇게 아침 정류장 풍경이 바뀌더니 이후에는 이 모습의 반복이었다. 언제나처럼 그녀는 버스정류장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 사이를 씩씩하게 뚫고 맨 앞자리를 차지한 후 제일 먼저 마을버스에 올라갔다. 며칠간은 그러려니 했지만 근 한 달 넘게 이런 모습이 반복되자 슬슬 부아가 치밀었다.
그날도 제일 늦게 왔지만 정류장 줄 맨 앞에 선 그녀에게 다가가 벼르고 벼른 말을 했다. “줄이 보이지 않느냐, 늦게 왔으면 뒤 쪽에 줄을 서라”고. 최대한 경어를 쓰며 나름 예의를 차려 말했지만 굳은 목소리에 날 선 표정도 충분히 읽혀졌으리라. 갑작스런 나의 말에 그녀의 눈에 짜증이 여과 없이 드러났지만 순순히 제일 뒤쪽으로 갔다. 그녀의 모습을 보며 영 마음이 편하지 않았는데, 그게 해결이 아니고 시작이었음을 이튿날부터 알게 되었다.
아침 출근길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복도 저쪽에서 그 여인이 오는 게 아닌가. 그녀와 나는 어색한 눈빛을 교환한 후 아무 말 없이 엘리베이터를 탔고 마을버스 정류장까지 몇 걸음 차이로 걸어가 버스를 기다리게 되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머리가 복잡했지만 정리해 보면 이렇다.
그녀는 한 달 전쯤 우리 아파트 같은 층의 엘리베이터 건너편에 이사 왔고 아침 7시 5분쯤에 오는 마을버스를 탔다. 그 동안 2, 3분 빨리 나온 나와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치지 않았다. 이 여인은 줄 서라고 잔소리하는 까칠한 중년 남자의 잔소리를 들은 후 조금 일찍 나온 것인데 아침마다 그 ‘진상’과 엘리베이터 앞에서 꼬박꼬박 마주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니 아침마다 현관 문 나서기가 괴로울 지경이었다.
그날 이후 “죄 짓고 못산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등등의 구절이 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내부고발자의 심정이 이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살다 보면 젊은 시절 그토록 싫어하던 ‘꼰대’의 모습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나서지 말라”는 등 듣기 싫던 말을 나 역시 천연덕스럽게 하고 있으니 사람은 나이 먹으면 비슷해지나 보다.
아침마다 피곤해지기 싫어 지하철역까지 걷기로 마음을 먹고 실행한지 얼마간 되었다. 본의 아니게 아침 운동을 하게 된 셈인데 매일 걸어 다녔더니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 느낌이다. 이번 가을부턴 좀 더 참아야겠다. 잘 될지 모르겠지만.
김상엽 건국대 인문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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