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책을 뒤적이다가 빨간 나뭇잎을 발견했다. 족히 수 십 년은 이리 채이고 저리 뒹굴었을 텐데 모양도 색깔도 온전하다. 어느 때의 단풍이었을까. 내가 끼워 넣었던 기억은 없다. 그런 아기자기한 취미는 없는 편이다. 페이지를 더 뒤적이니 몇 장 더 있다. 책을 뒤적여본다. 초판 발행이 1977년. 내가 초등학교도 가기 전이다. 검은 색 표지엔 흰 주름이 여러 갈래 패었고, 본문 종이는 누렇다 못해 황토 빛이다. 언제 처음 읽었는지 돌이켜본다. 고등학생 때였을 거다. 삼촌이나 고모가 읽던 책은 아니다. 아버지 지인이 읽어보라고 권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에도 나뭇잎이 있었던가. 기억이 또렷하지 않다. 그리 흥미로운 독서도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어른이 주는 거라면 다 재미없는 것이겠거니 하는 편견이 심한 소년이었다. 그랬는데도 30년 가까이 안 버리고 있는 것도 신기하다. 그래서 다시 읽어봤다. 나뭇잎 때문일까.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오래된 나무를 읽는 기분이다. 바싹 마른 물성과는 달리 스미는 농도가 친밀하고 촉촉하다. 분명 읽었었는데, 전혀 처음 듣는 이야기다. 이미 지나왔으나 직접 통과하진 못한 시간의 수맥 속으로 들어와 다시 소년이 된 걸까. 그때 못 짚었던 세상의 숨은 결을 늦게나마 만져보는 것 같다. 지금은 어떤 거대한 나무의 수관 속일까. 창 밖의 나무를 본다. 점점 붉어진다.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