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가난을 피해 대서양을 건넌 신성로마제국(독일)의 시민들이 332년 전 오늘(1683년 10월 6일) 북아메리카에 도착, 자신들의 첫 마을을 세웠다. 지금은 역사보전지구가 된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시 북서쪽 ‘저먼타운(Germantown)’이다. 지중해를 건넌 시리아 난민들과 달리 그들은 이민국의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근대 국민국가가 형성된 뒤, 다시 말해 나폴레옹 전쟁과 프로이센 중심의 독일제국이 건설(1871년)된 뒤로도, 특히 양차 대전과 나치 집권기에까지 저먼 디아스포라(German Diaspora)는 이어졌다. 현재 독일계 미국인은 약 5,000만 명. 그들은 아일랜드나 아프리카 멕시코 이탈리아 아시아계 이민자들보다 앞선 정착민으로서, 스스로 미국 역사의 주역이라 자부한다.
신성로마제국(962~1806)의 허울 좋은 1,000년 역사는, 볼테르의 말처럼 “신성하지도 않았고, 로마에 있지도 않았고, 제국도 아니었다.” 15세기 이후에는 사실상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손아귀에 있었고,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서로 흘겨보던 수많은 독립 제후공국들로 흩어져 있었다.
루터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가 세력을 확장해갔다. 로마 가톨릭을 공식 종교로 선포한 합스부르크 왕가가 개신교의 보헤미아와 전쟁을 시작한 건 1618년이었다. 이후 유럽 거의 모든 국가가 개신교-가톨릭 진영으로 나뉘어 벌인 ‘30년 전쟁’은 독일 인구의 약 2/3를 희생시킨 뒤 1648년 끝났다. 농토는 황무지로 변했고, 땅을 일굴 사람이 없었다. 당연히 치안도 정세도 불안정했다. 베스트팔렌조약 이후 신성로마제국에는 300여 개의 공국이 있었고, ‘30년 전쟁’의 용병들은 부랑자로 무리 지어 다니며 약탈을 일삼았다. 옛 독일인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대서양을 건넌 건 그래서였다.
저먼 타운을 세운 건 ‘콩코드(Concord)’호로 필라델피아에 닿은 라인란트 주 출신 퀘이커ㆍ메노파(절대평화주의 신봉) 교도 13명이었다. 그들은 영국 식민지 총독으로부터 땅을 얻어 돌집과 교회를 세우고 농사를 짓고 옷감을 짜고 세금을 냈다. 그들을 이어 종교ㆍ정치적 자유와 새로운 기회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 온 독일인은 19세기까지 약 800만 명에 달했다.
이제 독일이 시리아 난민들에게 국경을 열었다. 연말까지 100만 명을 받아들인다는 게 메르켈 정부의 계획이다. 300년 전과 사정은 판이하지만, 살자니 그 길 밖에 없어 배를 탄 사람들이 있고, 어느 땅에든 오르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는 똑 같다.
독일 정부는 자신들의 역사를 잊지 않았거나 덜 잊은 듯 보인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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