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통제하는 기술은 공포와 위선
유승민 이어 김무성도 무릎 꿇리려
공천ㆍ후계자 만들기 성공 정권 없어
박근혜 대통령의 권력에 대한 감각은 놀라울 정도다. 판세를 읽는 직관력과 권력 주도권을 장악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박 대통령의 승부사적 기질은 정치에 입문한 이후 갈고 닦은 것도 있겠지만 거의 본능에 가까워 보인다. 절대 권력을 추구한 아버지 박정희의 유전자와 한때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며 권력의 생리를 체득한 게 밑바탕이 됐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권력의 위기를 느끼는 순간 목표물을 정조준한 뒤 집중 공격을 퍼부어 상대를 단숨에 제압한다. 박 대통령이 과거 인터뷰에서 ‘동물의 왕국’을 즐겨본다고 했는데 고개가 끄덕여진다. 동물의 세계는 가장 강하고 빠른 것만이 살아남는다.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자비는 결코 허용되지 않는다.
박 대통령이 권력을 통제하는 기술은 마키아벨리즘에 가깝다.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사랑을 받는 게 나은가,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게 나은가”라고 물은 뒤 “군주는 호감을 얻지 못할지라도 미움을 사지 않는 방식으로 공포를 고취해야 한다”고 답했다. 나아가 “군주는 대단한 거짓말쟁이인 동시에 위선자가 돼야만 한다”고도 했다. 그가 군주의 덕목으로 제시한 공포와 위선은 박 대통령이 권력을 쟁취할 때 쓰는 수단이다.
유승민 찍어내기 때 많은 이들이 공포감을 느꼈다.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달라”는 한마디는 새누리당 의원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유 의원이 “죄송하다”고 고개를 조아렸지만 박 대통령은 움켜쥔 먹이를 놓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자 유승민 이름 석자는 금기어가 됐고, 대구 민심도 ‘반 유승민’으로 돌아섰다. 이번엔 김무성이 표적이 됐다. 뉴욕 출장에서 돌아온 박 대통령은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분노를 쏟아냈다. 먹잇감이 정해졌으니 상대가 포기할 때까지 끈질긴 공격만이 남아있다.
공포만으론 미흡하다고 판단했던지 위선까지 동원했다.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반대가 공천지분 싸움이 아니라 공정한 개혁공천에 대한 요구라고 강변했다. 내년 총선에서 ‘박근혜 키즈’를 심으려는 의도라는 걸 세상이 다 아는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 2012년 대선 경선 때 친박계가 도입해 박 대통령을 수혜자로 만들고, ‘대선후보 공약집’에서 ‘여야 동시 국민참여경선 법제화’를 약속하고도 딴소리다.
박 대통령은 이번에도 승리를 거머쥐는 듯하다. 김 대표가 청와대에 휴전을 제의하는 순간 이미 승패는 판가름 났다. 하루 동안의 당무 거부는 김 대표가 취할 수 있는 저항의 최대치다. 아무리 정치가 명분싸움이라지만 그것도 받쳐줄 세력이 있어야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유승민 때는 정당민주주의라는 명분이, 안심번호는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준다는 명분이 있는데도 꼬리를 내린 것은 결국 김무성의 역량 부족 탓이다.
박 대통령은 당장의 승리에 만족해할지 몰라도 더 큰 것을 간과하고 있다. 대통령 단임제에서 권력은 길어야 5년이다. 과거 정권도 유한한 권력을 무한정 유지할 것처럼 했다가 예외 없이 뒤탈이 났다. 차기 주자 옹립과 공천권 행사는 실패한 단골메뉴다. 노태우는 박철언을, 김영삼은 이인제를, 노무현은 한명숙을, 이명박은 정운찬을 차기 주자로 키우려다 제풀에 무너졌다.
정권만 타격을 입으면 모르겠지만 의회정치와 삼권분립 등 헌법적 가치의 훼손이 걱정이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청와대의 여의도 출장소’로 전락했다. 여당은 정부와 한 몸이기 이전에 삼권분립 정신에 따른 입법부의 한 축이다. 순전히 정당 내부의 일인 공천 문제에 청와대가 개입하는 건 정당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다. 지금은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임하며 공천권을 쥐고 휘두르는 권위주의 시대가 아니다. 아무런 당직도 갖지 않은 그저 평당원 중 하나일 뿐이다. 무슨 권한으로 여당을 틀어쥐고 흔드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은 과거 당 대표 시절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을 언급했을 때 짧은 논평을 냈다. “참 나쁜 대통령이다. 대통령 눈에는 선거밖에 안 보이느냐. 국민이 불행하다.” 고스란히 박 대통령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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