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군구 분할금지 예외 확대 등
농촌 대표성 더 찾아내도록 노력"
김대년 위원장 제안에 위원들 반발
형평성 문제에 선거법 위반 소지
상하한 인구 기준 변경안도 혼란 키워
선거구획정위원회(획정위) 위원장이 농어촌 지역대표성 확보 방안으로 ‘자치구ㆍ시ㆍ군 분할금지 원칙 예외 확대’를 제안하고 나서 파문이 일고 있다. 현행 공직선거법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데다 사실상 획정위 스스로 게리맨더링(자의적 선거구 조정)을 하겠다는 뜻이어서 획정위원들 조차 강력 반발하고 있다. 획정위가 지역구 상ㆍ하한 인구 산정방식 변경을 검토한다는 보도자료까지 내놓으면서 혼란이 커지고 있다.
김대년 획정위 위원장은 4일 “시군구 분할 금지의 원칙이 있지만 획정위가 예외 허용 폭을 넓혀서 농촌대표성을 더 찾아낼 수 있는지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선거구 인구편차를 2대 1로 줄이는 과정에서 9~13석 가량 축소가 불가피한 농어촌 지역구 중 일부를 ‘예외’로 인정해 구제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발언은 현행 선거법을 정면으로 위반할 소지가 크다. 공직선거법 25조는 ‘시·도의 관할구역안에서 인구·행정구역·지세·교통 기타 조건을 고려하여 이를 획정하되, 자치구·시·군의 일부를 분할하여 다른 국회의원지역구에 속하게 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부득이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단서를 달아 19대 총선에서는 해운대ㆍ기장을, 부산 북ㆍ강서을, 인천 서ㆍ강화을, 포항남ㆍ울릉 4군데를 예외 지역으로 허용했다.
김 위원장의 말에 따라 예외를 확대한다면 당장 어느 지역을 대상으로 할지에 대한 형평성 논란이 당장 일게 된다. 획정위가 정치권의 거센 압력에 직면할 가능성도 생긴다. 정치권 관계자는 “게리맨더링을 막기 위해 설치한 획정위가 되려 게리맨더링을 하겠다 것”이라며 “국회의 입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헌정 사상 처음으로 획정위를 독립기구로 꾸렸는데, 위원장이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인하고 나선 셈”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획정위 한 관계자는 “(김 위원장 발언은)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전향적 차원에서 논의를 해 나가자는 취지”라고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다.
획정위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한 획정위원은 “(시군구 분할금지 예외 확대는) 획정위전체회의에서 잠시 언급되긴 했지만 당시에도 현행 법 위반이라는 지적이 당장 나왔다”며 “선거법을 가장 앞장서서 지켜야 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차장 출신 위원장이 왜 위법한 발언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획정위원도 “지역 대표성 보장이라는 의도는 이해되지만, 획정위가 법을 위반하면서까지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획정위원들은 김 위원장의 주장과 사실상 궤를 같이 하는 보도자료가 이날 획정위 명의로 배포된 데 대해서도 “획정위에서 어떤 합의도 없었다”며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획정위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선거구획정 기준의 ‘대원칙’인 ‘상ㆍ하한 인구 기준’을 변경하는 방안을 공식화 한 것도 혼란을 낳고 있다. 현행‘평균 인구 수’ 기준을 도시지역 선거구 분구를 최대한 억제하는 ‘하한 인구 수 우선 설정’으로 변경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하지만 하한 기준을 정할 원칙이 없어 ‘자의성’ 논란으로 번질 수 있는데다, 선거구 조정 범위 등도 지금보다 더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획정위 한 핵심 관계자는 “하한선을 당초보다 높일 경우 분구 대상이 되는 도시지역 선거구가 줄어 그만큼 농어촌 지역 몫을 돌릴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보다 정밀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획정위에서 합의점을 찾기 위한 논의가 조속히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현기자 nani@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