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여 전 ‘대학구조개혁평가’ 결과가 발표되었다. 각 대학은 이 결과에 따라 재정지원사업은 물론 국가장학금과 학자금대출 등에 제한을 받는다. 예컨대, E등급을 받은 13개교의 경우 내년부터 재정지원사업, 국가장학금, 학자금 대출이 차단되고 컨설팅을 통해 평생교육시설로 기능 전환을 꾀하게 된다. 게다가 B등급부터 E등급 대학에 대해서는 차등적으로 정원 감축을 권고하고, A등급도 자율적 정원 감축을 유도하고 있다.
이는 대학구조개혁 정책에 따른 것으로 시작은 지난해 1월 교육부가 내놓은 ‘대학구조개혁 추진계획’이다. 이 문서에서 교육부는 “향후 고등교육 수급 전망에 따른 선제적 대응 필요”를 제1의 정책 배경으로 내세우고 있다. 2018년부터 대입정원과 고교졸업자 수의 역전현상이 발생하고, 2020년 이후 초과 정원이 급격히 증가하기 때문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원 감축”이 이 정책의 핵심 목표라는 사실은 계획서의 제목에 “학령인구 급감 대비를 위한”이란 수식구를 붙인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교육부는 평가를 거쳐 감축해나가되 2023년까지 16만명 정원 감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구조개혁 기간(2014~2022년)을 3기로 나누어 각각 4만, 5만, 7만명씩 감축한다는 것이다. 수도권과 지방, 일반대와 전문대로 구분해 접근해야 한다지만 1기의 감축 인원을 현 정원 비율에 따라 대학 2만5,300명, 전문대 1만4,700명으로 기계적으로 나누었을 뿐이다. 더구나 모든 정부재정지원사업 평가에 구조개혁 계획(실적)을 반영하여 ‘자율적 정원 감축’도 병행한다고 하니 관심사가 온통 정원 감축이다.
대학구조개혁 정책이 철학이나 전략적 관점이 부재한 상태에서 추진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이 점은 “정원 감축에 치중해 대학교육의 질과 경쟁력 제고를 위한 실질적 지원 대책이나 비전이 부재하다”는 대학총장들의 지적에서도 확인된바 있다. 이 정책이 발표된 지난해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하계 대학총장 세미나에서 나온 얘기로 “정부의 정책 실패에 대한 반성과 분석 없이 입학 자원의 감소를 빌미로 강제적인 양적 감축을 통한 구조개혁을 추진한다”는 비판이 함께 쏟아졌다.
사실 교육부는 부실 사립대학을 양산해온 장본인이다. 현재 사립대학은 285개인데, 5개교 중 1개교가 1996년 ‘대학설립준칙주의’ 도입 이후 신설되었다. ‘고등교육시장’ 진입 규제를 철폐하여 대학 간 경쟁을 유도하면 고등교육의 질이 높아질 것이란 허망한 가설에 따른 것이었다. 시대역행적인 이 정책은 결국 2013년에 공식 폐기되었는데, 교육부는 그 이유를 얼버무린다. “과거 경영계는 시장에 맡기는 정책이 유효하다는 입장을 개진하였으나, 실질적인 구조개혁 성과가 미흡하여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책임지기는커녕 남 탓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가 예상되는데도 불구하고 시장주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정책 실패를 자초한 당사자가 교육부라는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교육부가 이번에는 학령인구의 급감을 이유로 대학구조개혁의 전도사로 나선 것이다. “수도권과 지방이 공동 발전하는 고등교육 생태계 조성” 등을 명분으로 국가의 적극 개입을 말하지만 미덥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제 이윤 동기가 판치는 우리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획기적으로 제고하는 구조개혁 비전을 분명히 할 때다. 그것이 부실 교육으로부터 학생의 학습권을 보호하고 고등교육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다. 이를 위해 국ㆍ공립대 비중을 50% 이상으로 늘리고 정부지원형 사립대를 30% 안팎으로 끌어올리는 중장기계획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ㆍ공립대학의 비중이 20%에 불과한 환경에서는 백약이 무효다. 교육복지 수준이 높은 나라들의 경우 예외 없이 국ㆍ공립대 비중이 80% 이상인 현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무차별적이고 기계적인 정원 감축이 아니라 철학이 있는 대학구조개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김용일 한국해양대 교직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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