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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화] 어르신들께 해드린 닭온반 한 그릇

입력
2015.10.0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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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방송 촬영 차 영종도 삼목 선착장에서 배로 40분 거리에 있는 장봉도라는 섬을 방문했다. 홀로 사는 어르신(‘독거노인’이란 단어는 이상하게 맘에 안든다)들을 위해 점심 한 끼를 대접하러 간 것이다. 재능기부 형식의 촬영이었지만 처음부터 진행이 매끄럽지 못했다.

다른 방송사 촬영이 24,25일 1박2일 동안 진행이 되는데 25일 촬영이 딱 겹친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양 쪽 다 양해를 구해서 한 쪽엔 25일에 먼저 빠지고, 또 한 쪽은 조금 늦게 도착하는 걸로 합의를 보고 경북영덕에서 인천 삼목 선착장까지 달려갔다. 전날인 24일도 영덕에서 아침 9시에 시작되는 촬영시간을 맞추느라 3시간도 못잔 채로 새벽3시에 출발을 했고 25일도 마찬가지로 거의 3시간 정도 밖에 잠을 못잔 상태에서 인천으로 갔다. 영종도 삼목 선착장에 도착을 했는데 진행을 맡은 담당작가가 연락이 안되는 것이었다. 배 시간은 다가오는데 답답한 마음에 신경이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졌다. 그렇게 여객터미널 대합실에 앉아 있는데 작가로부터 전화가 왔다. 애써 화를 억누르며 어디냐고 했더니 벌써 장봉도에 들어갔다는 것.

어이가 없어서 ‘그럼 항구에서 기부물품 옮기는 것은 촬영 않느냐’고 되물었다. 내가 늦게 도착한다 해서 벌써 다 가지고 섬으로 들어갔다고 하면서 되려 나에게 몇 시 배로 들어 올거냐고 묻는 것이었다. 정말 화가 나서 촬영을 안하고 그냥 가버릴까도 생각했지만 일은 일이고 또 점심 한 끼 기다리시는 어르신들 생각에 꾹 참고 장봉도행 배를 타고 들어갔다. 가는 40분 동안 또 드넓은 바다를 보고 있자니 ‘사람이 하는 일인데 착오가 있을 수도 있겠지’라는 마음이 살짝 들기도 했다. 상한 마음을 아~~주 조금은 다스리며 장봉도에 내려서 어르신들이 오시기로 한 마을 회관에 도착했다.

그런데 거기서 또 문제가 터져 버렸다. 이날 음식이 30인분 정도라 진행 작가에게 혼자 하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내가 오기 전에 도와주시는 분들께 몇 가지 밑준비를 해주셨으면 좋겠다면서 닭온반 레시피를 미리 전달했던 터였다. 그러나 너무 열성적으로 준비를 해놓은 게 탈이었다. 음식을 국물만 퍼서 드리면 될 정도로 완성을 시켜놓아 버린 것이다. 내가 직접 음식을 만들어 대접해야 하고 또 그걸 촬영을 해야 되는데 음식이 완성되어 버렸으니 촬영팀이나 나나 대략난감이었다. 이런 게 바로 업친 데 겹친 격이 아니고 뭐람? 하지만 거기서 화내고 따지고 할 여유가 없었다. 재료들도 다 써버려 남은 것도 없어서 누구는 닭 잡으러 가고 누구는 채소 사러 가고 또 없는 건 봉사해주시는 아주머니 댁에서 공수해서 처음부터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어찌됐건 정신 없이 촬영 겸 요리를 마구마구 완성하고 어르신들께 겨우 점심 한 끼 대접을 해 드릴 수 있었다. 아~~ 험난한 1박 2일 이었다.

촬영이 다 끝나고 작가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내가 좀 늦게 도착한다 해서 구성안을 바꿨다고 이메일로 보냈다는 것이었다. 내가 알고 있던 구성안은 그 이전 버전이었다. 서로 잘 하려고 하다 생긴 일이었다. 어쨌든 음식촬영을 다 마치고 거동이 불편해서 마을 회관까지 못 오신 어르신 댁에 닭온반을 가지고 가서 기부 물품과 함께 전달해드리고 마지막 마무리 인터뷰를 하는데 PD가 이런 질문을 했다. “태화씨 이런 밥을 해서 한 끼 대접하는 봉사가 이분들께 정말 필요한 걸까요?” 나는 이런 대답을 했다 “ 밥 한 끼라도 이분들껜 생명과 직결된 문제라고 봐요. 특히 거동이 불편하고 옆에 돌봐줄 사람이 없는 어르신들에겐 특히나 더요. 이런 밥 한 끼 봉사를 통해서 한 번이라도 더 그분들과 소통하고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는 게 필요한 세상 아닙니까?” 우리도 언젠간 홀로 늙어갈 것이다.

개인적으론 정말 힘든 하루였지만 그 모든 피로를 씻을 수 있을 만큼, 아니 오히려 더 채워서 돌아간 장봉도의 하루였다.

요리하는 배우

● 닭온반

재료: 닭 1마리, 파 1대, 양파 1개, 생강 2톨, 통후추 15알, 마늘 15쪽, 오이 1개, 당근 1개, 애호박 1개, 건표고 10개, 계란 5개

닭무침: 다진파 3큰술, 다진 마늘 1큰술, 소금 약간, (각자 입맛에 맞춰) 후추 약간, 깨소금 약간, 참기름 약간, 간장 1작은술, 설탕 1/2 작은술

● 조리방법

1. 큰냄비에 잘씻은 껍질을 벗긴닭과 파 양파 생강 통후추 마늘을 넣고 1시간을 끓인다.

2. 오이 당근 애호박을 새끼손가락 길이로 채썰어 소금을 조금만 뿌려 살짝 볶는다.

3. 건표고는 불에 불려 채썰어 간장 설탕 참기름을 넣고 버무린 다음 살짝 볶는다.

4. 계란은 잘 풀어서 얇게 지단을 부쳐 채썬다.

5. 1의 닭이 다 삶아졌으면 닭살을 모두 발라 내어 닭무침 양념으로 무쳐 놓고 뼈는 다시 국물에 넣어 30분간 더 우린다.

6. 닭육수가 완성되면 고운 면보에 걸러 준비한다.

7. 그릇에 밥을 담고 그 위에 채소 고명을 두르고 한가운데 닭살 무침을 한웅큼 올린 뒤 그 위에 계란 지단을 올려 국물을 붓고 완성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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