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가담 혐의로 잡혀가
예비 사돈댁에 피해 안 주려 연극
지난 3월 22일 수도권의 한 예식장. 결혼식을 올린 신랑, 신부는 내내 고개를 들지 못하고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신랑, 신부의 가족들 역시 같은 표정이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진짜 신부’가 아니라 그의 언니였기 때문이다. 진짜 신부 A(27)씨는 결혼식 바로 전날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됐다.
결혼을 하루 앞둔 상황에서 예식을 파기할 수 없어 임시방편으로 언니를 신부로 속여 결혼식을 진행한 A씨의 황당한 사연이 뒤늦게 재판 과정에서 알려졌다. 결혼자금 마련으로 고민하던 A씨는 지난해 10월 고등학교 동창 B(26ㆍ여)씨로부터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이 입금한 돈을 인출해 필리핀에 있는 조직에 보내면 일당 5만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여 국내 인출책을 맡았다.
손쉽게 결혼자금을 모으려던 A씨의 철없는 꿈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이 났다. A씨가 포함된 보이스피싱 일당 45명이 경찰에 적발된 것. A씨도 사기 및 전자금융거래법위반 혐의로 결혼을 하루 앞둔 3월 21일 구속됐다.
A씨 가족들은 예비 사돈댁에게 피해가 번지지 않도록 부랴부랴 임기응변을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기혼자인 A씨의 둘째 언니가 구속된 막내 동생 대신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장에 입장해 가짜 결혼식을 치르기로 한 것이다.
A씨는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 받고 항소했지만 항소심 재판에서도 실형을 면하지 못했다. 서울북부지법 형사2부(부장 강인철)는 2일 A씨에 대해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 A씨는 현재 예비 신랑과 파혼하고 헤어진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빈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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