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 같은 밤’이라 하면 어떤 밤일까? 요즘은 칠흑(漆黑)이 뭔지 몰라 아주 깜깜한 밤이 연상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칠흙’으로 쓰는 사람도 있으니까. 빛의 삼원색은 합하면 합할수록 흰빛에 가까워지지만, 색의 삼원색은 그와 반대로 합하면 합할수록 어두워진다. 빨강, 노랑, 파랑 색이 “폭 껴안아/ 검정이 되”는 것이다. 껴안지 않고 따로 놀아서는 검정이 되지 못한다.
밤이 사라진 시대다. 도시고 시골이고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와 가게의 조명과 전광판, 텔레비전의 번득임이 밤을 지배한다. 달빛을 몰아내고 별빛을 몰아낸다. 스마트폰의 빛이 너와 나의 얼굴을 비춘다. 사람들은 일부러 깜깜한 밤을 찾아 나서고, 깜깜한 밤을 유영하는 반딧불이를 만나러 멀리 떠나야 한다. 깜깜한 밤은 그리움의 다른 이름이다. 달빛도 별빛도 불빛도 없는 칠흑 같은 밤의 고요 속에서 아이는, 동심은 “무엇, 무엇, 무엇이/ 꼬옥/ 껴안고 있을까?” 의문을 품는다. 의문이라기보다 꼬옥 껴안고 있는 존재에 둘러싸여 있음을 느끼고 있다. 세상만물, 삼라만상이 침잠하는 평화의 시간이다. 그 시간에 대한 염원이다.
껴안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다. 껴안으면 되니까. 빨강, 노랑, 파랑은 목적어가 아니고 주어이다. 내가 껴안고 네가 껴안고 그가 껴안고, 서로 포옥 껴안아 깜깜해지면 된다. 내전으로 매일 수천 명의 난민이 국경을 넘고 성지순례 참사로 천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바람 잘 날 없는 지구. 껴안으면 깜깜해지노니, 낮의 시간이 아니라 깜깜한 밤의 시간이 와야겠다.
김이구 문학평론가
*문학평론가 김이구씨가 고르고 해설까지 곁들인 동시 감상 코너 ‘동시동심’을 격주 새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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