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이뤄진 이명박 대통령의 미 의회 합동연설이 상ㆍ하원 지도부 이견으로 무산 직전에 몰렸으나, 주미 한국대사관이 고용한 로비기업의 강력한 요청으로 막판 미 국무부가 적극 개입하면서 성사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 힐러리 클린턴 장관시절 미 국무부에서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파적 이익 대신 국가 이익을 앞세운 덕분에 한국이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할 수 있었다”고 평가한 문건이 회람되기도 했다.
미 국무부는 30일 민주당 대선 후보인 클린턴 전 장관이 재임 당시 개인 서버를 통해 주고 받은 6,300건의 이메일을 추가 공개했다. 이번 메일에도 문제가 될만한 기밀사항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한국과 관련한 부분에서는 이 전 대통령 방미와 한국 지도자에 대한 미국 외교당국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됐다.
셰릴 밀즈 비서실장이 클린턴 전 장관에게 2011년 10월4일 전달한 메일에 따르면 당시 한국 정부가 추진한 이 전 대통령의 의회 합동연설은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과 민주당이 다수인 상원의 갈등으로 무산될 상황이었다. 합동연설 초청권을 가진 존 베이너(공화당) 하원의장이 상원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면 이 전 대통령을 초청하지 않겠다고 버틴 것이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주미 한국대사관이 고용한 친 민주당 성향의 워싱턴 로비기업 ‘글로버 파크 그룹’(GPG)이 나섰다. 수잔 브로피 이사는 밀즈 실장에게 긴급 도움을 요청했다. 브로피 이사는 “국무부가 (외교적으로 중요한) 한국 대통령의 의회 연설을 보고 싶다면, 상원이 비준안 처리에 성의를 보이도록 힘써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브로피 이사의 이메일은 밀즈 실장을 거쳐 클린턴 전 장관에게까지 전달됐고, 실제로 상원 지도부가 비준안 처리 절차를 밟으면서 10월7일에는 베이너 의장이 초청장 발송을 공식 발표했다.
2011년 7월에는 로버트 호매트 국무부 차관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극찬한 이메일을 클린턴 장관에 보내기도 했다. 보안상의 이유로 전반부 내용이 통째로 지워진 ‘야당 지도자’(Opposition leader)라는 제목의 이메일에서 호매트 차관은 “한국의 김대중은 훌륭한 야당 지도자의 좋은 본보기”라고 평가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골드만삭스 부회장으로 한국 정부에 조언한 경험을 되새기며, 야당 대통령 후보로서 국제통화기금(IMF) 처방에 반대하던 김 전 대통령이 당선인이 된 뒤 당리보다 국익을 앞세우는 행보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전 대통령이 주도한 국가적 단결로 한국은 세계에서 존경 받는 나라가 됐다고 강조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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