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먼로 슐츠(Charles M. Schultz, 1922~2000)의 만화 ‘피너츠(Peanuts·사진)’가 1950년 10월 2일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9개 신문에 첫 선을 보였다. 피너츠는 슐츠의 별세 다음 날인 2000년 2월 13일자까지 모두 1만7,897편이 발표됐고, 여러 애니메이션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졌다. 69년 아폴로 10호 달 착륙선과 지령선에 피너츠의 두 주인공 ‘스누피’와 ‘찰리 브라운’이름이 붙기도 했다. 한국에는 80년대 애니메이션 드라마로 먼저 소개됐다.
피너츠는 야구를 좋아하지만 시합에선 늘 지기만 하는 ‘둥근 머리 소년’ 찰리 브라운과 폐소공포증이 있어 지붕 위에서 하늘을 보며 잠을 자는 비글 스누피가 친구들과 벌이는, 유쾌하고 뭉클하고 아릿한 에피소드 연작이다. 첫 회는 찰리 브라운을 소개하는 내용. 멀리서 찰리가 다가오자 두 친구가 반갑게 찰리를 부른다. 찰리가 못 본 듯 지나쳐가자 더 공손한 어조로 인사를 건네고, 찰리가 내처 가버리자 뒤에 대고 “나 찰리 정말 싫어”라고 말하고 마는 네 컷 만화. 단 한 마디 대사도 없이 그렇게 등장한 찰리는, 하지만 매회 연재가 거듭되면서 결코 싫어할 수 없는 캐릭터로 자리잡는다.
하지만 찰리보다 더 엉뚱하고, 말 없고, 더 영리하고, 속 깊을 게 확실한 스누피가 피너츠의 진짜 주인공인지 모른다. 스누피의 주옥 같은 어록들(엄밀히 말하자면 생각들)만 봐도 슐츠가 스누피에게 들인 공이 짐작된다.
- 중요한 건 사랑이지. 하지만 초콜릿도 가끔은 나쁘지 않아.(스누피는 초코칩 광이다.)
- 훈련(Exercise)은 더러운 말이야. 그 말을 들은 뒤엔 난 늘 초콜릿으로 입을 씻곤 해.
- 나는 인류(mankind)를 사랑해…, 하지만 사람(people)은 딱 싫어!
- 가끔 밤에 잠 못 들어 혼자 묻곤 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그럼 어떤 목소리가 들려. ‘하룻밤 더 자고 생각해.’
- 일생 동안 그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어. 하지만 결국 실패했지. 왜냐면 그는 개가 아니라 사람이었거든.
- 난 목표도 방향도 의미도 없이 살지만, 행복해. 왠지 모르겠어. 뭐가 잘못된 거지?
- 어제로부터 배우고, 오늘을 살면서, 내일을 예비하라. (하지만 일단) 오늘 오후는 쉬고!
두 발로 서서도 걷고, 내키면 귀를 팔락거려 날 수도 있을 만큼 스누피는 전능하다. “난 일생 동안 딱 한 번 실수를 했어. 뭐냐면, 내가 실수를 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실수였던 거지.” 슐츠는 다른 이가 피너츠를 이어 그리는 일이 싫다고 유언했고, 유언대로 피너츠는 끝이 났다. 하지만, 스누피와 찰리 브라운은 말 안 듣기로 유명한 녀석들이지 않은가.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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